[내외뉴스통신 연재] 연주를 차지한 조조가 인재를 모으고 있을 때, 무장 하후돈이 거한(巨漢) 한 사람을 조조 앞에 데리고 왔다.

"제가 사냥을 나갔다가 이 사람이 범을 쫓는 모습을 보았는데 범보다도 더 사납고 날랬습니다. 말 위에서 양 손에 팔십 근이나 되는 쌍철극(雙鐵戟)을 잡고 휘두르는 모습은 가히 신기(神技)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강풍이 불어와 진중의 큰 깃발이 쓰러지려 했다. 여러 군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으나 워낙 바람이 거세어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이때 그 거한이 뛰어나가 한 손으로 깃대를 잡았는데, 깃대는 뿌리라도 내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조가 감탄하며 말했다.

"악래가 다시 살아났구나!"

악래란 옛 은나라 시대의 전설적인 장사(壯士)의 이름이다. 조조는 입고 있던 비단옷을 벗어주며 치하하고 그를 도위에 임명했다.

전위(典韋)가 삼국지에 처음 등장하는 모습이다. 조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조조를 여러 번 사지에서 구해주었고, 전장에서 바람을 피우는 조조의 막사를 지키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무장 전위의 눈부신 무용과 충절을 회고해 보고자 한다.

여포의 군사와 싸우다가 포위되어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던 조조, 빠져나갈 곳을 찾으며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누가 나를 구할 이 없느냐?"

이때 여포군의 창칼 속을 뚫고 전위가 나타났다. 그는 말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조조를 호위하며 재빨리 표창 꾸러미를 꺼내들었다. 그의 손에서 표창 하나가 날아갈 때마다 적병들이 피를 쏟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순식간에 십여 명이 죽어 넘어지자 여포의 군사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기에 바빴다. 전위는 다시 말을 타고 양손에 쌍철극을 휘두르며 조조를 위급에서 구해내었다. 쌍철극은 양손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쌍으로 된 쇠창으로 전위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조조가 다시 여포의 성안에 갇혀 포위가 되었을 때, 또 다시 전위가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나타나 조조를 구해 성문으로 이끌었다. 이때 조조는 불붙은 성문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말에서 떨어져 수염과 머리칼이 타고 몸에도 화상을 입었다. 전위의 온몸은 창과 칼의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후, 동탁의 부하였던 장제의 조카 장수(張繡)의 항복을 받은 조조는 장제의 미망인 추 씨가 기막히게 미인이란 소문을 듣고 추 씨를 자신의 군막으로 불렀다. 과부인 추 씨도 상대가 천하의 조조인지라 싫지 않은 듯 은근히 추파를 던지며 교태를 부렸다. 두 사람이 연일 음락(淫樂)에 빠져있는 동안 전위는 조조의 막사를 지키고 있었다.

조조가 자신의 숙모와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항장(降將) 장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옛 무장들을 다시 규합하여 조조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조조의 막사 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전위였다. 그의 쌍철극이 두려웠다. 고민 끝에 장수는 전위를 초청하여 곤드레가 되도록 술을 먹이고 그의 쌍철극을 감추어 버렸다.

그날 밤, 장수는 사방에 불을 놓고 함성을 지르며 조조의 군막을 습격했다. 그때 추 씨를 끼고 잠자리에 들었던 조조는 함성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전위를 찾았다.

"전위, 전위는 어디 있느냐?"

그때 전위는 조조의 군막 앞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에 전위도 눈을 번쩍 떴다. 온 사방에 불길이 번져가고 있었고, 반란군 병사들이 조조의 군막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쌍철극이 보이지 않았다. 전위는 급한 김에 옆 병사의 칼을 뺏어들고 다가오는 군사들을 닥치는 대로 베었다.

술에 취해 자다가 뛰어나온 탓에 몸에 갑옷을 걸치지 못한 데다, 무기도 손에 익은 쌍철극이 아닌지라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접근하는 적병은 모두 그의 칼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칼날이 무디어지자 전위는 칼을 버리고 양 손에 적병 하나씩을 잡았다. 이번엔 전위가 휘두르는 사람몽둥이에 맞아서 적병들이 또 우수수 쓰러졌다. 정말 술이 덜 깬 것이 맞나싶을 정도로 눈부신 무예요, 무서운 용력이었다.

주춤해진 반란군들은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 물러서서 활을 쏘기 시작했다. 막사 앞에 버텨선 전위의 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무수히 꽂혔다. 이때 등 뒤로 다가선 적병 하나가 그의 등에 창을 꽂았다. 전위는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며 쓰러져 땅바닥을 온통 선혈로 물들이고 숨을 거두었다.

한편 조조는 전위가 문 앞에서 적을 막고 있는 사이, 재빨리 뒷문으로 빠져나가 조카 조안민과 함께 도망쳤다. 조안민은 뒤따라오는 적병을 막다가 목숨을 잃었고, 조조는 타고 있던 말이 화살에 맞는 바람에 땅에 굴러 떨어졌다.

그때, 어디서부터 따라왔는지 맏아들 조앙이 황급히 말에서 뛰어내리며 '아버님, 이 말을 타십시오' 하며 조조에게 말고삐를 내밀었다. 조조는 재빨리 말 위에 올라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조앙은 소나기처럼 퍼부어 대는 적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겨우 숨을 돌린 조조는 다시 패군을 수습, 반격하여 마침내 장수의 반란군을 물리쳤다. 진중에서 여색을 탐하다가 충직한 경호실장 전위와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조카를 잃은 조조, 회군 길에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조조는 친히 술을 따르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록 맏아들과 조카를 잃었으나 그것은 그리 슬프지 않다. 지금 내가 우는 것은 오직 전위를 위해서이다"

조조의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말 조조의 진심 그대로일까? 다른 뜻은 없을까? 아마도 이 말은 무장들의 분기(奮起)를 촉구하고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조 특유의 쇼맨십일 가능성이 높다. 유비가 당양벌에서 조운이 구해온 아들 아두를 땅바닥에 팽개치면서 무장들의 비위를 맞추었던 것처럼.

그러나 굳이 그렇게 곡해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으리라. 비록 적장일지라도 충성스러운 무장은 죽이지 않고 흠모해 마지않던 조조가 아니던가. 섬기는 주인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전위의 충절도 가상하거니와, 그를 잊지 않고 충혼을 기리는 조조의 끝마무리도 참으로 일세의 영웅답지 않은가.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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