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조조가 한창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던 무렵, 산적을 소탕하던 용장 전위가 산적 두목으로 보이는 한 거한과 마주쳤다. 8척이 넘는 우람한 체구에 굵은 허리통, 의연한 이목구비…. 얼핏 봐도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전위가 쌍철극을 내지르며 공격 자세를 취하자, 거한은 큰 칼을 뽑아들고 맞섰다.

마치 여의주를 놓고 두 마리의 용이 다투듯 두 무사의 현란한 무예가 반나절이 넘게 펼쳐졌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당시 조조진영에서 최고의 용장으로 불리던 전위의 혀를 내두르게 한 거한, 그가 바로 허저(許楮)이다. 자는 중강(仲康), 초국 출신이다. 결국 허저는 인재를 탐내던 조조의 계책에 걸려 생포되어 조조의 휘하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허저의 용력에 관한 일화 하나. 허저가 살던 마을에 양식이 떨어져 마을 사람들이 도적들에게 소 두 마리를 주고 대신 곡식을 받기로 했다. 소를 주고 약정한 곡식을 받았으나, 도적들이 소를 끌고 가다 놓치는 바람에 소가 다시 마을로 되돌아왔다. 이때 허저가 소 두 마리의 꼬리를 양 손에 잡고 백여 보(步)를 끌어다 주었더니 도적들이 놀라서 소도 받지 않고 모두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조조가 이각과 곽사의 대군과 맞섰을 때, 조조의 명을 받고 뛰어나간 허저가 이각의 조카 이섬과 이별의 목을 단숨에 베어오자, 조조는 허저의 등을 쓸어주며 '그대는 실로 나의 번쾌로다!'하며 칭찬했다. 번쾌는 한고조 유방이 항우와 싸울 때 주로 선봉장을 맡았던 전설적인 맹장이다.

실제로 허저는 조조의 근위대장 역을 맡으면서 선봉장까지 겸했다. 그의 무예를 평가한다면 조조진영에서 서황 전위 등과 함께 선두를 다툴 정도라 할 수 있으리라. 큰 칼 하나로, 창술의 대가 조자룡을 상대로 30여 합을 싸웠고, 삼국지 최고의 무예를 지닌 여포와도 단독으로 20여 합을 싸웠으니 말이다. 결국 하후돈 하후연 전위 이전 악진 등 조조 진영의 여섯 장수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여포를 물리쳤지만.

이번에는 허저의 고지식하고 우직함이 돋보이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조조가 술이 취해서 잠들어 있을 때 조조의 심복이며 사촌동생인 조인이 찾아왔다. 그러나 근위대장 허저가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실랑이 끝에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 허저에게 꾸중은커녕 참으로 믿음직하다며 오히려 칭찬을 했다.

허저는 양봉 한섬 장수 등과의 싸움에서도, 여포 정벌 및 원소와의 관도 전투에서도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지만, 형주의 신야에 있는 유비 토벌에 선봉장으로 출전했을 때는 제갈량의 계략에 빠져 참패한다. 또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게 무참히 패배한 조조를 호위하여 허도로 돌아오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허저를 얘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량의 금마초라 불리던 마초와의 피 터지는 싸움일 것이다. 서량의 군벌 마등이 조조에게 잡혀 처형되자, 그의 아들 마초가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군사를 일으켰고, 양군은 동관에서 마주하게 된다.

마초와 한수가 이끄는 서량병의 기세등등한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강 언덕에까지 쫓겨 온 조조,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다. 이때 허저가 신속하게 조조를 들쳐 업고 강 언덕에서 두 길이나 떨어져 있는 배 위로 뛰어내렸다.

추격하던 마초의 장졸들이 강 언덕에서 활을 쏘아대자, 허저는 한 손으로 잡은 말안장으로 화살을 막아내면서 다른 손으로는 노를 저었다. 허저의 이런 초인적인 용력 덕분에 조조는 사지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조조가 위수에 부교(浮橋)를 설치하자, 마초는 은밀히 군사를 보내 부교를 불태워버렸다. 조조가 다시 강가에 토성을 쌓자, 이번에도 마초가 군사를 보내 허물어 버렸다. 계속된 실패로 조조가 낙담하고 있을 때 한 도인이 나타나 '날씨가 추워졌으니 흙을 쌓으면서 물을 뿌려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대로 했더니 과연 쌓은 흙이 얼어붙어 하룻밤 만에 토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다시 기세가 오른 조조가 허저를 앞세우고 토성에 올라가 호령을 하자, 저쪽에서는 분기탱천(憤氣撐天)한 마초가 뛰쳐나왔다. 허저와 마초, 두 사람의 불꽃 튀는 공방이 펼쳐졌다. 용호상박이랄까, 백여 합을 다투어도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말이 지치자, 말을 바꿔 타고 다시 백여 합을 더 싸웠지만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았다.

허저가 다시 투구와 갑옷은 물론 웃통까지 벗어던지고 칼 한 자루만 든 채 말을 달려 나가자, 마초 역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마초의 창을 피하던 허저가 칼을 버리고 창 자루를 잡았다.

창 자루가 와지끈~ 하고 부러졌다. 이번에는 부러진 창 자루를 잡고 싸웠지만 역시 막상막하, 도무지 결판이 나지 않았다. 웃통을 벗어던진 허저와 마초가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은 너무도 유명해서 그림으로 그려져 삼국지의 각 판본에 삽화로 실려 있다.

조조는 혹시라도 허저가 다칠까봐 하후연과 조홍에게 나가서 함께 싸우라고 명했고, 마초진영에서는 방덕과 마대가 나섰다. 두 진영의 장수와 군사들까지 어우러져 일대 혼전이 벌어지자, 그때서야 두 장수가 싸움을 멈추고 떨어졌다.

그 어지러운 전투 속에서 허저는 팔에 두 군데나 화살을 맞았다. 다시 허저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다 쫓기게 된 마초는 결국 유비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그 후에 허저는 마초의 부장이었던 방덕과도 50합이 넘게 싸우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때 조조가 무용이 뛰어난 방덕을 탐내자, 허저는 방덕을 함정에 빠뜨린 후 사로잡아 조조의 휘하에 들어오게 한다. 나중에 방덕은 촉장 관우와의 전투에서 조조군의 선봉장으로 나서서 용감하게 싸우지 않는가.

용장 허저, 군율을 중시했으며 늘 과묵하고 신중하여 조조가 여색을 밝히고 황제를 업신여기는 등 월권을 해도 모른 척하며 조조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허저는 조조가 죽자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고 전해진다. 수(壽)를 다하고 70세에 병으로 죽었다.

조조군의 맹장 허저, 호랑이처럼 용맹스럽다 해서 처음엔 '호치(虎痴)'로 불리어졌고, 나중에는 '호후(虎侯)'로 승진(?)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한 허저야말로 참으로 멋진 사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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