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연일 바람을 일으키며 이슈화에 성공한 모양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기타 필요에 따라 의사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 고의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필리버스터라는 용어는 16세기의 '해적 사략선(私掠船)'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막기 위해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부터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한국의 필리버스터는 많이 다르다. 미국은 단 한 명만 "나, 무제한 토론 할래" 하면 가동된다. 100명의 상원의원 중 단 1명만 무제한 토론을 신청해도 99명이 꼼짝없이 그날 하루를 공친다. 누구처럼 집단 퇴장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소수의 항변이라고 인정한다. 똘레랑스(관용)다.

한국은 재적의원의 1/3 서명이 있어야 하고 미국과 달리 한번 단상에 섰다가 내려가면 다시는 토론기회가 없다. 미국은 로테이션도 가능하다. 먹어가면서 할 수도 있고 도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단상을 잠깐 맡겨놓고 다녀와서 다시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아 대단한 것이다.

특히 우리는 관련 내용만 발언해야 한다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미국처럼 전화번호부를 줄줄 읽을 수 없다. 누구는 열 시간 했네, 별게 아니네, 어쩌네 하는 사람들처럼 이죽거리는 사람도 없다. 미국 필리버스터 테드크루즈는 지금 씨스팬 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 재워야 한다며 동화책을 읽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문화가 다르다고 정책이나 제도가 다른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필리버스터는 법에 명시된 제도다.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든다. 그것도 법을 만드는 국회가 더 법을 이용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미국과 한국이 필리버스터를 대하는 태도, 그것은 인식의 차이다. 관용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 우리는 '협상'이라는 테이블에서 이뤄져야 한다. 핏대를 세우고 상대와 상대 당을 비난하고 무성의하고 무시하는 태도, 그런 국회에서 관용과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20대 총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선거구획정은 시간이 촉박하다.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면 시간은 누구 편일까?

야당은 여당에게 테러방지법 협상을 통한 조속한 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정원의 감청 조건을 '국가안보에 우려가 있는 경우'로 제한한 2차 중재안을 협상테이블에 올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은 현재 직권 상정된 테러방지법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이 총선을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선거구획정안 본회의 처리를 계속 미룰 수 없고 테러방지법도 자연스럽게 통과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여당의 배짱협상이, 야당의 물밑협상이 극적 타결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 이상, 국회는 '식물국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2012년 5월 12일까지는 필리버스터가 허가되지 않았다. 그날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선진화법의 한 조항으로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하려는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고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실시 한다' 는 국회법 제106조를 신설함으로써 필리버스터를 허용했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마련된 국회선진화법이 제대로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필리버스터 8번째 주자 더민주 신경민 의원은 필리버스터가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공약이며 새누리당 홈페이지 공약집에 나와 있다고 폭로했다. 새누리당 홈페이지가 마비사태로 이어지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야당의 100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 진행에도 협상이나 타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테러방지법은 대한민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IS와 핵 개발에 혈안이 된 북한 등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진 정부로서는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다. 이런 법안을 두고 배짱을 부리고 법안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는 '막장국회'를 더 이상 국민들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무엇을 위한 정의인지도 구분 못하는 '앵무새 국회'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40여일 남았다. 20대 총선이. 이번 필리버스터가 어느 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어느 의원이 잘했니, 못 했니 하는 말도 우습다. 이것은 '봉숭아 학당' 코미디가 아니다.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공학적 계산까지도 허용할 수 없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가 왜 '볼모'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김흥두
부산대학교 졸업
前 울산매일 편집국장 직무대리
前 신울산일보 편집국장
現 내외뉴스통신 본부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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