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조조의 기라성 같은 참모들, 순욱 순유 정욱 곽가 유엽 만총 여건 모개 허유…. 이들 중에서 조조가 가장 총애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순욱과 곽가이리라.

둘 다 탁월한 혜안을 지닌 천재 참모였고, 순욱은 한 황실에 대한 충심(忠心)이, 곽가는 조조 개인에 대한 충심이 충만한 인물이었다. 이중에서 특히 조조와 코드가 잘 맞았던 곽가가 남긴 행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곽가(郭嘉), 자는 봉효(奉孝). 영천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장래를 내다보는 예지력과 통찰력이 뛰어났고, 성년이 되어서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천하의 영걸들과 교유했다. 처음엔 원소를 찾아갔으나 그의 인물됨을 보고 실망하여 곧 그를 떠났다. 그 후 조조의 참모 정욱의 추천을 받아 조조군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조조와 곽가는 만나자마자 한 나절 동안 천하대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조조는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대업을 이루어줄 사람'이라고 곽가를 평가하였고, 곽가도 '이제야 나는 진정한 주군을 만났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각과 곽사에 쫓기던 황제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을 때,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던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와서 황제를 호위, 낙양으로 입성한다. 그러나 낙양에서의 조조의 기반은 미약했다. 안에서는 중신들이라는 커다란 벽이 존재하고 있었고, 밖에서는 원소 원술 공손찬 여포 등 신흥군벌들이 호시탐탐 낙양에 입성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때, 조조의 고향과 가까운 허도로 어가를 옮겨야 실질적인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조가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곽가는 허도로 옮겨가면 크게 흥하게 될 것이라며 조조에게 자신감을 북돋워주었다. 결국 허도로 수도를 옮긴 조조는 황제를 등에 업고 제후를 호령하는 명실상부한 실력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여포에게 쫓기던 유비가 조조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 조조의 참모들 중에 유비를 죽여 후환을 없애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곽가는 유비를 받아들여 천하에 주공의 덕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채택한다.

북방 4개주를 차지한 원소가 허도를 침공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아직 원소에게 대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조조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곽가는 '한 고조 유방이 힘으로는 항우에게 미치지 못했으나 결국 지략으로 승리했듯이, 원소는 군사만 많을 뿐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다'며 조조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요인과 원소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조조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한다.

조조는 우환거리를 없애기 위해 유비와 연합하여 먼저 여포 토벌에 나선다. 처음엔 고전하지만 조조는 순욱과 곽가의 계책대로 기수와 사수의 물길을 돌려 하비성을 물에 가두는 작전을 감행, 자중지란으로 부하에게 잡혀온 여포와 그의 참모 진궁을 처형하고 장료와 장패 등 여포진영의 용장들을 새로 얻는 개가를 올린다.

그 후, 조조가 유비를 공략할 때도 원소가 허도로 쳐들어올 것이라며 반대하는 참모들이 있었으나, 곽가는 원소에게는 그런 결단력이 없다며 유비를 치도록 진언한다. 결국 조조는 유비를 공략하여 관우를 포로로 잡는다.

원소를 물리친 조조가 원소의 아들 원상을 추격하고 오환족 정벌을 준비할 때도, 참모들은 형주의 유표가 유비를 앞세워 허도를 습격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곽가는 유표 역시 그럴 만한 그릇이 못된다며 안심하고 원정에 나서도록 조언한다.

원정길에 나선 조조군이 치중(輜重)이란 장비 때문에 행군속도가 늦어지는 어려움을 겪자, 곽가는 치중은 그대로 남겨놓고 기병들로 하여금 신속한 야간기습으로 적의 의표를 찌르도록 하여 오환족을 격파하게 한다.

그러나 오환정벌 때 풍토병에 걸린 곽가는 조조를 만난 지 11년째 되는 해, 38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조조는 곽가의 영구를 먼저 허도로 보내 후하게 장사지내고, 황제에게 상주하여 정후(貞侯)라는 시호를 내리게 한다.

한편, 곽가가 일찍 죽은 것은 여색을 너무 밝히는 바람에 건강을 해친 탓이라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곽가가 유부녀를 탐하는 등 품행에 문제가 있다며 진군이라는 사람이 탄핵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개의치 않고 곽가의 재능을 존중하고, 사심 없이 탄핵을 한 진군도 중용하였다. 여기서 조조의 절묘한 용병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곽가에게는 다른 참모들이 갖지 못한 예지(豫知)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그가 말이나 글로 남긴 몇 가지 예측은 신통하게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대치하고 있을 때, 강동의 소패왕으로 불리던 손책이 허도를 습격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곽가는 손책이 결코 허도로 오지 못할 것이라며 그의 급한 성격과 만용 때문에 암살당할 것이라고 예측하였고, 결국 그의 말대로 되었다.

또 오환족 격파 후, 조조는 요동으로 도망친 원소의 아들 원상과 원희 형제를 계속 추격할 것인가 아니면 추격을 멈출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죽은 곽가가 남긴 편지에 '좀 있으면 원상과 원희의 목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씌어있는 것을 보고 추격을 멈추기로 한다.

후일 요동태수 공손강이 두 사람의 목을 가져오자, 조조는 '봉효는 참으로 하늘이 내린 동량'이라며 탄복한다. 생각하건대 이런 부분들은 곽가의 뛰어난 예지능력과 통찰력을 강조하기 위해, 결과가 나온 후에 저자가 꿰어 맞춰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어쨌든 그의 혜안은 조조의 절대적인 신뢰와 칭송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조조의 곽가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곽가의 죽음을 한탄하며 그가 참모들에게 남긴 말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대들은 모두 나와 나이가 비슷하지만 곽가는 매우 젊었다. 그래서 내 죽은 뒤의 일을 곽가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으니…"

또, 조조의 백만 대군이 손권과 유비의 5만 연합군에게 적벽에서 여지없이 패한 후, 패잔병들과 함께 돌아오던 조조가 남긴 말에서 곽가의 존재가치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 봉효가 있었더라면 결코 이렇게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000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