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한국과 일본이 지난 연말 '불가역적(不可逆的)' 최종 합의에 도달하여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던 일본군 전시 위안부 문제가 UN의 개입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간 듯 보입니다.
인권 관련 UN 위원회들이 지난해 12월 28일의 한일 합의문이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에 만족스럽지 않다고 일본에 경고한 가운데, UN 반기문 사무총장은 UN 사상 처음으로 한국 위안부와 지원단체 대표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 윤미향 여사는 30여개 위안부 국제 지원단체가 공동 작성한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이 서한에서 지원단체들은 지난 12월의 한일 합의문 내용을 반박하고, UN이 직접 위안부문제 진상을 조사하도록 요망하였다고, 윤 대표가 말했습니다.
이달 초 제네바에서 열린 UN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대표 윤병세 외무장관은, 12월의 한일 합의서에 따라 위안부 문제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국회에서는 위안부를 창녀(娼女)라고 발언한 여당 의원에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주의를 주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문 내용에 불만을 품은 45명의 위안부 생존자를 대표하여 길원옥(89) 할머니와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지난주 반기문 총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들은 또 반 총장이 12월 합의문에 관련해 한일 두 나라를 축하한 사실도 항의할 예정이었습니다.
윤 대표에 의하면, 길 할머니는 시차에서 오는 피로로 발언도 잘 못하는 상태였는데 반 총장이 먼저 이 문제에 언급하며, 자기가 축하한 것은 두 나라의 합의 그 자체였고 합의 내용을 찬동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반 총장 부인 유순택 여사도 동석한 자리에서, 반 총장은 외무장관 시절에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얘기와, 부인 유 여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밝히면서 길 할머니를 위로했다고, 윤 대표가 전했습니다.
이에 앞서 UN 여자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게 "피해자 중심의 해결방법이 충분치 않았다"고 지적하고 "피해자에 대해 국제인권법에 따른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비난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해결 전국행동'이라는 일본인 인권단체는 일본 외무장관에게 이 UN의 충고를 받아들이라는 요청서를 제출했습니다. UN인권이사회 고등판무관의 보고서는 '용기 있고 당당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모든 차별 철폐를 위한 UN 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는 일본정부에 "피해자의 피해회복 권리를 인정하고, 따라서 보상, 만족, 공식 사과 및 회복치유 서비스를 포함한 충분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촉구하였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옛말이 있습니다만, 3월이 절반을 지나고 일본 남쪽에는 봄꽃 소식이 들려오는데 일본 정계의 봄소식은 아직 요원한 모양입니다. 전전(戰前)의 일본 3월은 화사하고, 행사가 많고, 바쁜 분위기 속에 빨리 지나간다고 일반 시민이 느끼고 즐겼습니다.
우리 '삼월삼짇날'에 해당하는 3월 3일은 '복숭아 축제'로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 집집마다 복스러운 꼬마인형을 진열한 제단을 마련하는 명절입니다. 6일은 당시 천황의 황후 생일로, 그리고 10일은 '육군기념일'로 공휴일이었습니다.
1905년 3월 10일, 로일(露日)전쟁에서 일본군이 러시아제국 육군을 대파하여, 지금의 만주 심양(瀋陽)을 점령한 날을 기념한, 옛 일본제국의 자랑스러운 공휴일이었습니다. 수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군악대를 앞세운 육군 장병의 화려한 가두행렬이 있었습니다.
21일의 춘분은 춘계황령제(春季皇靈祭)로 황실이 조상 제사를 지내는 날로 역시 공휴일이었습니다. 2~3일 후에는 각 학교 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회계연도가 곧 끝났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 학교, 기업체가 모두 분주하게 이 달을 보냈습니다.
4월부터 시작하는 학년제와 회계연도제는 지금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으나, 다른 공휴일은 패전 후 폐지되거나 이름을 바꾸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3월 말에 많은 직장에서 인사이동이 있어,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태평양전쟁 패전 수개월을 앞둔 1945년 3월 10일 육군기념일에 미국은 공습사상 최대 규모의 폭격기 352대로, 수도 도쿄의 3분의 1이 소실되고 10만을 넘는 휘생자를 내는 이른바 '도쿄대공습'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도쿄에 거주하던 약 10만명의 조선인 중 1만명 가까이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년 전, 3월 11일에는 일본 사상 최대의 동일본대지진(東日本大地震)으로 2만명 가까운 휘생자를 냈고,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수많은 시설이 파괴되었습니다. 세계은행이 근대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도 17만을 넘는 주민이 피난시설이나 셋집에 거주하고 있는 후쿠시마(福島)현 일대의 복구사업은 금후 3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일본정부 당국이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달에 두 곳의 중의원 보궐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의 춘삼월(春三月)은 여러모로 바쁘고 착잡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TIME 서울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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