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한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윤봉한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내외뉴스통신] 윤봉한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정보기관은 “국가의 정치적인 건강 수준을 가장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척도”라고 한다. 이는 정보기관이 정치적 요소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으며, 정치로부터 독립한 정보활동이 어렵다는 ‘정보의 정치화’ 주장의 배경이 된다. 곧 정권을 쟁취한 지도자가 정치적 입맛에 따라 정보기관을 개혁하고 시스템을 재단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자행되었던 국가정보기관의 피폐화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문 정권은 적정한 국회 토론이나 국민여론 수렴절차도 없이 국정원법을 뜯어 고쳐서 국내 보안정보활동과 대공수사권을 박탈하고, 원훈(院訓)까지 바꾸어 간첩 글씨로 된 원훈석을 국정원 청사 정면에 설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임기 내내 김정은을 맹신하는 덫에 갇혀 국민여론을 덧칠하면서 다수당의 위력으로 국가 중추 신경조직을 무력화 시키는 횡포를 일삼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 국정원 지도부를 전면 교체하면서, 원훈을 창설 당시의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指向)한다”로 복원하는 것으로 국정원 정상화 과업을 시작했다. 새롭게 단장한 국정원 홈페이지에는 역동적인 장면을 배경으로 원조 원훈과 함께 “드러냄 없이 묵묵히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영광과 발전을 최고의 명예로 삼겠습니다”라는 경구가 팝업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국정원 활동목표와 방향이 민주적이고 희생적인 방향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관의 원훈은 곧 해당기관의 좌우명이며 국가정보가 추구하는 목표와 핵심 가치를 담고 있다.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평가받는 미국 CIA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You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이스라엘 모사드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고,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리라 (Where no wise direction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 007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MI6는 “언제나 비밀(Semper Occultus)”, MI5는 ’왕실을 보호하라(defend realm)”라는 모토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기관의 모토는 기관이 존속하는 한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정권의 교체 시기마다 거의 어김없이 ‘국정원 개혁’을 빌미로  원훈이 교체되었다. ‘정보는 국력’(김대중 정부, 1988), ‘자유와 정의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이명박, 2008),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박근혜, 2016)에 이어 창립 60주년인 2021년도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문재인)으로 대체되어 왔다.

근본적인 정보목표가 동일함에도 위정자의 이념적 가치를 투영시킨 원훈이 자주 교체됨으로써 정보기관의 정체성과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원조 원훈석 교체로 비롯된 국정원의 정상화 작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최우선적으로 조직 내부정비를 하고, 이어 외부의 정보 장애 요인을 제거하면서 정보활동 체계를 복원하고, 나아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정보활동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정상화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붕괴된 조직 내부의 정보활동 체계를 하루빨리 정상적으로 정비하고, 무력감에 젖은 구성원들의 사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내부에 잔존하는 인적・물적 장애요인을 찾아 제거하고, 동시에 성실한 조직원들이 명예롭게 직무에 충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피폭(被爆)으로 붕괴된 정보수사 기능에 대한 정상화 방향을 결정하여야 한다. 역사적으로 내부 불만세력이나 반란, 역모, 쿠데타, 혁명, 여적 및 스파이와 같은 내부위협 요인이 국가흥망의 결정적 계기를 된 사례는 무수하다. 

따라서, 국가정보기관이 국가 내부에서 발흥하는 위협 (insider threat)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보안정보활동의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된다. 나아가 앞으로 1년여 남짓 기간 이후 경찰이 독점하게 되는 대공수사(정보) 활동에 대한 소명적 해결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커뮤니티(지구촌 마을)의 정보환경에서 전통적인 정보활동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복잡화・융합화・첨단화된 신흥안보 분야의 정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간부문 정보역량을 흡입하고 국제 정보사회와 협력을 유인하기 위한 방책도 수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보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기관 내부의 강한 자정의지와 함께 정부와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파적 이익이나 개인의 이해를 넘어 국가와 국민에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줄 때 비로소 신뢰받는 국정원이 될 수 있다.

[윤봉한 교수]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정보학회 이사 
한국사이버포렌식전문가협회 부회장
한국자금세탁방지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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