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묵 칼럼니스트
김홍묵 칼럼니스트

[내외뉴스통신] 김홍묵 칼럼니스트

-“오늘 저녁부터는 네가 우리 집 가장이다.”

1960년 5월 30일(월), 4·19의거로 이승만 정부 내각 총사퇴 이후 3·15 부정선거 ‘원흉’으로 몰려 검찰 출두를 앞둔 아버지가 한 달여 전 초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이른 ‘유언’같은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버지를 무어라 말하든 너는 개의치 말아라. 네 아버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믿고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살아라.” 아버지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 강조한 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검찰이 부른 서대문형무소를 향했습니다.

-“이제부터 여기서 지내라.”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행랑채에 딸린 작은 창고를 개조한 방으로 아들을 보내며 내린 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 ‘남자는 엄마 품에서 크면 안 된다’는 신념의 실행이었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도 울면 안 되고, ‘엄마’ ‘아빠’ 대신 ‘어머니’ ‘아버님’으로 호칭해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가족에게도 엄한 가장인 아버지는 아들에게는 특별하게 엄했습니다. 엄부자모(嚴父慈母)의 훈육입니다.

-“사람이 공부를 가장 잘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들의 경기중학교 수석 합격 발표가 있던 날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던진 정떨어지는 경고였습니다.

이 일로 아들은 아버지와 정신적으로 멀어졌습니다. 약점을 보이기도 야단을 맞기도 싫었습니다. 아들의 잘못을 무조건 어머니가 교육을 잘못한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도 신상 문제를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들은 무술에 몰두했습니다. 태권도·유도·합기도·18기·차력·검도 등입니다. 아버지가 2년 7개월 영어(囹圄) 생활을 하는 동안 ‘원흉의 아들’로 멸시당하던 시절부터 내면에 싹튼 ‘남자는 주먹이다’를 좌우명으로.

-“너 방학했지? 내일 아침에 집을 나가거라.”

중학 첫 여름방학 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덤덤하게 내린 하명이었습니다. “남자란 어릴 때부터 혼자 여행해봐야 사람이 된다. 개학 전날 돌아오너라. 내일 아침 먹고 바로 떠나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들은 그때부터 경기고 3학년 때까지 해마다 여름은 물론 겨울방학마다 집을 나가야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주는 용돈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아들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의도’라는 뜻을 새겨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했다고 자부합니다.

부흥부 장관, 보사부 장관, 경제부총리, 국무총리를 역임한 아버지 신현확(申鉉碻 1920~2007)과 서울대(경제학과) 스탠퍼드대(경제학박사)를 나와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 국무총리실 정책차장(차관급),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을 지낸 아들 신철식(申喆湜 1954~) 간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말하고 아들이 기록한 현대사의 순간들’ 부제의 <신현확의 증언>에 실린 ‘밥상머리 교육’ 내용들입니다.

요즘 부모와 자식 간 행태와는 사뭇 다르지만 오늘날 실종되다시피 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반추하게 하는 대목들입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인성 예절 등에 관한 교육’이라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자녀를 위한 밥상머리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의 내용·지침을 나열하기도 벅찹니다.

시대상이 바뀌면서 그 밥상머리 교육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한 밥상에 앉을 기회가 줄어든 탓일 것입니다. 바깥일에 지친 가장은 피곤하다고, SNS에 빠진 자녀들 마음은 콩밭(게임·동영상·채팅 등)에 가 있어 대화의 장이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평생 엄하게 자식을 굴종시키고, 아버지의 말은 절대 복종하는 일방통행식 교육이 시대 상황에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교육이 없는 자녀들은 ‘배운 무식자’(leaned ignoramus)가 될 수 있음도 염두에 둘 일입니다.

[김홍묵 촌철]
경북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前한국일보-동아일보 기자
前대구방송 서울지사장
現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現내외뉴스통신 객원칼럼니스트

nbn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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