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원소를 물리치고 북방을 평정한 조조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략요충지인 형주를 손에 넣기 위해 먼저 외교교섭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래서 형주자사 유표에게 보낼 세객을 찾고 있을 때, 고매한 학식으로 이름 높은 선비 공융이 한 사람을 추천했다.

"예형을 보내시지요. 재주와 학문이 깊고 기설종횡(奇說從橫)의 설봉(舌鋒)이 사람을 찌르기도 하지만, 뛰어난 학식과 고고한 성품으로 명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보내면 아무 두려움 없이 대임을 수행할 것입니다"

조조의 부름을 받은 예형이 조당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조조 휘하의 문무백관들을 휘~ 둘러보고는 이렇게 일갈했다.

"아아, 인물이 없구나, 인물이 없어!"

그 말을 듣고 불쾌해진 조조, 가시 돋친 목소리로 힐문했다.

"어찌 인물이 없는가? 내 휘하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재사양장(才士良將)들이 보이지 않는가? 잘 들어 두어라. 먼저 이쪽의 순욱과 순유 곽가 정욱 만총 등은 모두 지모가 깊은 인재들이요, 저쪽의 장료와 허저 이전 악진 등은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지니고 있어 모두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수들이다. 서황과 우금은 최고의 선봉장들이고 또 하후돈은 천하의 기재이다. 또…"

예형은 그 말을 듣다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내가 이들의 인물평을 해보겠소. 듣기가 좀 거북하더라도 과히 허물치 마오' 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순욱은 상가를 문상케 함이 제격이요, 순유는 묘 자리를 돌보게 하고, 정욱은 문지기를 시키는 것이 좋겠소. 곽가는 글을 쓰게 하거나 시를 짓게 하는 것으로 족하며, 장료는 북이나 징을 두드리게 하고, 허저는 소나 말, 돼지를 기르게 하면 잘 하리라. 이전은 편지를 돌리는 배달부로 쓰면 어울릴 거고, 만총에게는 술독을 맡기면 십상이겠소. 서황은 개백정이 적임이고, 우금은 등에 지게를 지워서 담이라도 쌓게 하면 잘하리라. 하후돈은 애꾸니까 안과 의원의 약가방을 들고 따라다니면 어울릴 거요"

"…………"

한조의 신하를 자임해온 예형, 조조의 역심을 간파하고 조조를 섬기는 무리들을 통렬하게 힐난한 것이다. 조조의 면전에서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은 예형, 과연 무사할 것인가?

조조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애당초 기인(奇人)이라는 것을 알고 불렀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해칠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을 죽이면 자신의 협량만 드러내 보일 뿐.

조조는 예형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악단(樂團)에서 북 치는 자리를 하나 마련해주었다. 며칠 후, 성대한 주연이 열렸을 때 예형도 그 악단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그의 북치는 솜씨는 의외로 수준급이어서 별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자 조조는 그가 입고 온 누더기 옷을 꼬투리 잡았다.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조조가 꾸짖자, 예형은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었다.

"하늘을 저버리고 천자를 속이는 무례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무례 중 어느 쪽이 더 과한가 생각해 보시오. 명사(名士)를 불러놓고 제대로 예우하지 않고 북을 치게 하여 욕보이는 것은 소인배의 행동이 아니오?"

그가 알몸으로 조조에게 대꾸하자, 만좌해 있던 여러 장수들이 더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 그를 죽이려 했다. 조조가 얼른 제지하며 이렇게 명을 내렸다.

"좋다. 그렇다면 그대는 곧바로 형주로 가서 유표를 설득하여 내 휘하에 들어오도록 하라.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를 궁중의 학부(學府)에다 모시고 중용하리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 내심으로는 유표가 예형을 어떻게 처리(?)해주기를 바랐으리라. 그렇게 되면 골치 아픈 놈도 제거하고, 유표를 칠 명분도 생기고.

예형이 형주로 떠났다. 형주에 가서도 그의 괴설(怪說)은 이어졌다. 유표 역시 내심으로는 '귀찮은 놈이 왔구나' 싶었지만, 조조의 사자라 박대할 수가 없어서 황조가 지키는 강하로 그를 보냈다.

예형을 환영하기 위해 술상을 마련한 황조,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학인(學人), 지금의 조조 진영에는 누가 참다운 인물이라 할 수 있소?"

"음, 어른으로는 공융, 청년으로는 양수지요"

예형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공융은 공자의 후손으로 학식과 인망을 갖춘 재사(才士)로 건안칠자의 선두이고, 양수는 한(漢)의 태위를 지낸 양표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천재로 알려진 재사이다. 뛰어난 혜안으로 조조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소?" 내친 김에 황조가 물었다.

"그대는 말이지, 산신당의 귀신이겠지" 예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산신당 귀신?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오?" 황조가 다시 물었다.

"아, 그건 말이오, 주민들의 제사를 받아먹고도 아무런 영험도 없다는 뜻이오. 말하자면 제물(祭物)을 도적질하는 허수아비라고나 할까" 예형이 거침없이 말했다.

"뭐라고? 이놈이…!"

발끈한 황조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예형을 찔러 죽였다.

조조는 예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결국 설검(舌劍)으로 자신을 찌르고 말았군!'하며 고소해 했다. 그러나 조조의 특사 임무를 띠고 간 외교사절이 유표의 부하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은 중대한 외교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예형의 죽음으로 조조와 유표간의 외교관계는 끊어지고 결국 두 사람은 적이 되고 말았다. 조조가 대군을 일으켜 밀고 내려오자, 이미 유표는 병들어 죽었고, 형주를 물려받은 작은아들 유종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해버리고 말지 않는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몸조심을 하는 난세에 좀처럼 보기 드문 기인 예형.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누구 앞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힌 절개가 굳은 선비였을까? 아니면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고 혼자 잘난 체한 썩은 선비였을까?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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