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s, be ambitious!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1877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농림학교의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 교장이 1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퇴임사에서 한 말입니다. 일본 근대화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는 그의 명언은 우리나라 청장년들에게도 귀에 쟁쟁하게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136년이 지난 이 겨울, 이 나라 청년들이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절규하고 나섰습니다.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27) 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타이틀로 내건 대자보가 시발점이 되어 일파만파로 그에 화답한 젊은이들의 반향입니다. 스스로 ‘하류층’임을 자인하는 사람이 국민의 절반에 육박하는 세태이고 보면 그들의 외침은 세밑 크리스마스 캐럴보다 더 찡하게 울립니다.


매서추세츠주립대 농과대 학장이던 클라크 박사는 당시 황무지 상태였던 홋카이도 개발을 추진하던 일본정부 초청으로 1876년 9월 삿포로농림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지방정부가 엄선한 11명의 학생들은 그러나 수업도 빠지고 술을 마시며 행패를 부리는 등 불성실한 태도였습니다. 일본 관리가 엄격한 교칙을 만들자고 제의했으나 그는 ‘신사가 되라(Be gentleman)'는 한마디면 충분하다며 일축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음주를 금지했습니다. 자신도 호주가였던 클라크는 미국서 가져온 1년간 마실 술을 학교에 맡기고 금주를 서약한 후 이를 지켰습니다. 그는 선진 농업기술과 학문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공부를 통해 신앙심을 일깨워 젊은이들을 따르게 했습니다. 1868년 명치유신 직후 혼란기에 신학문을 접한 그의 제자들은 농업 기술자나 사회 지도자로 거듭나 일본 근대화의 선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홋카이도 개척의 아버지’ 클라크는 지금도 삿포로 시내의 동상으로, 농림학교 후신인 국립홋카이도대학 교정의 흉상으로 살아 있습니다. 야망과 포부와 이상을 가지라고 역설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한 선각자의 교훈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약동하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더러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주의 야욕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그 일본이 납작 엎드렸던 ‘잃어버린 20년’을 떨치고 재무장을 들먹이는 이 시점에 우리 젊은이들은 왜 이처럼 좌절과 자학으로 시달리고 있을까요. 안녕하지 못한 빌미는 철도파업과 대량 직위해제, 국정원 선거개입 공방, 밀양 송전탑 관련 주민 자살, 의료 민영화, 종북 몰이 등 정치 사회 현안들입니다. 그러나 대자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극도의 자조, 자괴, 무력감으로 인한 아노미(anomie) 상태가 만연해 있는 듯합니다.


-상식을 잃고 침묵에 젖어버린 우리들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꿈엔 전혀 관심 없고 세상을 향한 우리의 아우성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오래 전 늙어 쉬어버린 느낌입니다.(서강대)


-공감하기를 포기하고, 강요만 하는 야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요.(성공회대)


-학점 잘 받고, 스펙 쌓고, 열심히 하면 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학점이니 취업이니 하면서 나를 옭아매는 이 염병할 매트릭스(matrix) 속에서 파란 약을 먹어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지랄 같은 세상입니다.(고려대)


-삶이 고단해질수록 고민의 넓이는 좁아지고, 내 고민이 협소해질수록 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삶은 더욱더 고단해집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자각할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습니다.(서울대)


더러는 다소 선동조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입이다.(부산대)


-누구나 기회를 얻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관심이 무관심을 이기고,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는 날이 오겠지요. 상식적인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지성의 몫이며 의무입니다.(가톨릭대)


젊음, 그것은 정의 창조 용기의 원동력입니다. 청년은 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들의 덕행은 봄의 새싹보다 아취가 있습니다. ‘열과 빛’ 그것은 청춘의 화신이며, ‘결백’ 그것은 청춘의 대명사입니다. 돈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이 이뤄지지만 청춘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향기와 힘 그리고 이성의 열병으로 충만한 청춘은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물이 아닙니다.


청춘의 사전에는 실패란 말은 없다고 합니다. 청년시절의 실패는 낙담하고 물러섰는가, 아니면 용기를 내어 재도전했는가에 따라 성공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의 청년은 국가 번영의 관재인(管財人)’(B. 디즈레일리), ‘한 청년을 잘 훈련시키는 것은 성(城) 하나를 빼앗는 것보다 값진 일’(P.S.멜란히톤)이라고 한 예찬은 바로 돈으로 계량할 수 없는 청춘의 값어치를 말한 것입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후생가외(後生可畏)할 청년들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의기소침해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스스로 ‘88만원 세대’ ‘남의 일에 무감각해진 이기주의자’라고 일컫는 자조, 아니면 ‘가난을 모르고 자라난 풍족한 세대’라는 질타 탓일까요. 아마도 대학을 5~10년 다녀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등골 브레이커, 결혼 출산 육아마저 부모에게 기대야 하는 캥거루족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괴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과 괴담이 난무하는 히스터리(histery)와 미스토리(mystory) 사이에서 목표와 희망을 상실한 채 방황하는 청년들. 그들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하기엔 너무 절박하고, “청년들이여 분노하라(boys be anxious)"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다는 자책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혼이 들어 있는 청춘은 그렇게 쉬 멸망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카로사(Hans Carossa 1878~1956, 독일의 의사, 시인, 소설가)의 경구로 위안이 될지···.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의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자유칼럼그룹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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