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선 KTX로 2시간에 도착하는 강릉 겨울바다와 안목해변 커피거리

가수 최백호의 ‘바다 끝’ 노래가 흘러나온다. 
“짙은 어둠만 남은 시작도 그 끝도 알 수 없는 그곳에 물결처럼 춤추던 너와 나를 놓아주자.”

매년 겨울이면 바다가 나를 부른다. 언제부턴가 세월과 인생에 항복하게 되면서 내려놓을 것도 많이 없어졌지만, 해마다 겨울이 되면 바다를 보기 위해 바다 끝으로 날려 버릴 것들을 만들어낸다. 사실 아무리 버리고 지우고 와도 늘 다시 찾아오던 번뇌는 어쩌면 내가 ‘나’를 마주하기 위해 만들어낸 창작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출처=Pixabay)
(출처=Pixabay)

이번 혼자 떠나는 KTX 당일여행은 강릉 겨울바다로 소개한다. 많은 동해바다 중 강릉의 바다를 택한 이유는 동해바다로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코스이기 때문이다. 또 해변 트레킹,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에 앉아 바다를 보며 나와 대화하기,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나를 기록하는 혼행 플랜이 가능한 최적의 장소가 강릉 안목해수욕장이다. 이번에는 다양한 장소를 탐방하지 않을 예정이다. 온전히 겨울바다 그 하나로도 충분할 것 같다. 대신 준비물로 노트와 펜이 필요하다. 

 

서울역에서 13:01 강릉행 KTX 기차로 출발
강릉이 가까워졌다. 서울역과 강릉역을 오가는 경강선 KTX가 개통되고 2시간이면 강릉에 도착한다. 예전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6시간 걸려서 갔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놀랍다. 당일치기로 겨울 바다에 가려면 꼭두새벽부터 챙겼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석양이 지는 바다를 보기 위해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출발한다. 단 기차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바다 풍경을 만끽하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무궁화호와 달리 KTX는 내륙을 관통해 가기 때문이다.  

 

15:02 강릉역 도착, 안목 해변으로 이동
강릉역 맞은편 223-1, 225-1번 버스를 타고 20분 이동해서 안목 커피 거리에 하차한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다. 안목 해변에 도착해서 파도를 영상으로 담으려니 사람들이 자꾸 카메라 앵글에 잡힌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바다가 보내는 파도를 온전히 마주하고 싶다.

 

안목 해변에서 강릉 송정해수욕장까지 해변가 트레킹

강릉 안목 해변 일몰 (사진=강릉시청) 
강릉 안목 해변 일몰 (사진=강릉시청) 

안목 해변에서 시야에 사람이 닿지 않는 곳을 찾는다. 안목 방파제 쪽으로 인파가 몰려있어 강릉 송정해수욕장 방향(도보로 15분 거리 / 1km)으로 걸으며 머물 곳을 찾는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해봤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잠시 몸을 비켜준다. 낙서가 희미해지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내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마음을 써볼까 망설인다. 주변에 아무도 없지만 꺼내놓기가 왠지 쑥스럽다. 이내 파도가 와서 지워줄 것이지만 아직 용기가 필요한가 보다. 좀 더 어두워지면 해볼 심산이다.

 

석양에 물든 바다 앞에서 나와 대화하기

강릉 바다의 일몰 (사진=강릉시청) 
강릉 바다의 일몰 (사진=강릉시청) 

인적이 드문 바다 앞에 섰다. 바다 끝 수평선을 바라본다. 넘실대는 파도를 눈에 초점을 놓은 상태로 흐리게 바라본다. 입술과 미간에 들어간 힘을 풀어준다. 멍한 상태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니 어느 순간 마치 매직아이처럼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 펼쳐진다. 나는 어디에 있지? 마치 내 몸이 바다로 흡수되어 일렁거리는 것 같다. 애초부터 홀로 존재했던 나였는데 왜 그렇게 혼자 남겨질까 애를 써왔을까 싶다. 사람들의 평판에 휘둘리며 파도처럼 일렁이던 나를, 외로움이라는 환상에 갇힌 나를 일몰 앞에 세워두고 대화를 시작한다.

 

(출처=Pixabay)
(출처=Pixabay)

“차마 꺼내지 못한 두려움과 상처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 바라봄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내고 자신을 마주했을 때 상처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은 일어날 일이었을 뿐이라고, 그러니 너의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잘 살아왔고 또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이제 한발씩 내디디면 된다고 말합니다.” 외로움은 자신과의 거리감 中

감춰두었던 마음이 파도가 밀려와 지워버린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안목거리 카페에서 나를 기록하다

안목 커피거리 (사진=강릉시청)   
안목 커피거리 (사진=강릉시청)   

주말이라 카페 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원래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놓고 혼행일지를 쓸 계획이었다. 창가 자리는 포기한다 치더라도 다른 곳도 혼자 차지할 테이블이 없다. 근처 편의점 2층에 커피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커피와 빵을 사서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오늘 석양빛 물든 바다에서 나눈 나와의 대화를 적어본다. 

 

20:30 서울행 KTX 열차에 몸을 싣고 나와의 특별한 시간을 마무리한다. 
돌아오는 KTX 열차 안에서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잠이 온다. 문득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긴장되어 있는 내 어깨. 의식적으로 한숨을 쉬면서 어깨에 힘을 빼면서 나도 모르게 쓸데없이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무게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졸음의 끝자락에 정신을 부여잡고 오늘 적은 혼행일지를 읽어본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읽지도 않을 일지를 참 열심히도 적었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 지나서 우연히 펼쳐보게 될 때면 살짝 오글거림과 함께 생각과 감정이 많이 변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늘 그랬다.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있을 것 같은 마음속 일들도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계속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글거림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나는 그것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 아닐까? 노트를 접고 힘이 빠진 어깨를 느끼며 잠에 들었다.

 

[내외뉴스통신] 박민석 기자 ppolip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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