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삼국지의 세 영웅인 조조 유비 손권이 함께 대학입시에 응시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수능시험에서는 틀림없이 머리가 좋은 조조가 1등을 할 것이고, 내신 성적은 도덕 교과서 같은 유비가 1등을 할 것이다. 손권은 아마도 두 가지 모두에서 2등을 하리라.

손권(孫權). 큰 입과 네모진 턱, 푸른 빛 광채가 도는 눈을 가진 붉은 수염의 사나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조조와 유비가 마지막까지 불꽃 튀는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느긋하게 구경하며 가장 오랫동안 권좌에 앉아 있었다.

조조처럼 비상한 머리를 가진 수재도 아니고, 유비처럼 은근히 사람을 끄는 매력을 지닌 모범생도 아닌, 그저 우등생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인물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위대한 보통사람'이라고나 할까.

위와 촉의 틈바구니에서 오나라가 편안하게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리(地利), 즉 양자강이라는 천연적인 방어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더불어 손권의 뛰어난 지도력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수성의 명군으로 꼽히는 손권의 출신배경과 통치스타일(leadership), 그리고 그의 실책을 살펴보자.

손권의 출신배경을 설명하려면 먼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양자강 남쪽에 손견이라는 토호(土豪)가 있었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전국시대의 전술가 손무의 후예이다. 그 피를 타고 났는지 용감무쌍하고 책략도 뛰어났다.

손견은 후한 말 혼란기에 황건적을 토벌하여 명성을 얻었다. 또 동탁을 무찌르는 연합군에도 가담하여 용맹을 떨쳤다. 선봉으로 도성에 입성하면서, 운 좋게도 잃어버린 한의 옥새를 궁궐 우물에서 건져 올리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고향으로 향하던 중, 저지하는 형주의 유표와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고 만다.

그의 큰아들 손책이 뒤를 이었다. 그도 아비를 닮아 영웅의 기개(氣槪)를 타고 나 통이 크고 무예도 출중하여 강동의 소패왕(小覇王)으로 불리었다. 부업(父業)을 이어 종횡무진 활약하며 강동지역을 모두 평정했다.

그러나 성격이 너무 호방하고 저돌적이었다. 북방에서 조조가 원소와 싸우고 있을 때 대담하게도 조조의 본거지를 기습하여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말았다.

손권은 숨을 거두는 형 손책으로부터 19살 때 후사를 부탁받는다. 그 후, 71살까지 장수하며 52년간 오를 훌륭하게 지켜낸다.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창업(創業)의 인물이라면 손권은 수성(守成)의 교본 같은 인물이다. 창업은 군중을 휘어잡는 탁월한 쇼맨십이 있어야 하고 아울러 천운도 따라야 하지만 수성은 본인의 역량이 중요할 뿐 천운이 차지하는 요소는 아주 적다.

손권은 항상 신중하고 겸허했으며 참을성이 강했다. 그가 중원을 넘보지 않고 오직 물려받은 땅을 지키기만 한 것은 결코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고 항상 한 발 물러서서 차선책을 구하는 그의 '넘버 투(number two)' 정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형에게 충성하던 장소와 주유를 사부(師父)의 예로 대하였고 한번 발탁한 사람은 끝까지 신뢰했다. 능히 의심할 여지가 있는 제갈량의 친형인 제갈근을 끝까지 신뢰하고 대임을 맡긴 것은 그의 이러한 점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강북을 제패한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양자강을 넘어오려 하자, 신중한 성격의 그가 주화파를 물리치고 단호히 싸우기로 한 것을 보면 그의 외유(外柔) 속에는 강인한 의지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결국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 5만 명이 조조의 백만 대군을 적벽에서 궤멸시키지 않았는가.

그러나 손권은 침략한 위군을 물리치기만 할 뿐 패주하는 조조를 좇아 중원의 패권을 넘보지는 않았다. 만약 그의 아버지 손견이나 형 손책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틀림없이 여세를 몰아 조조를 추격하여 위의 본거지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삼국지의 스토리는 사뭇 달라졌으리라.

손권은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 황제로부터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를 물려받아 위 황제가 되자, 스스로 신하라고 칭하는 등 때에 따라 몸을 굽힐 줄도 알았다. 그가 오나라의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 것을 보면 그의 용인술도 흠잡을 데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나라 안의 일은 장소와 장굉, 제갈근 등의 조언을 받아 잘 처결했다. 또 나라 바깥의 일도 주유 같은 명장들에게 맡겨서 잘 처결했다. 조조의 백만대군은 주유와 노숙이 물리쳤고, 여몽은 오의 필생의 숙원이던 형주를 탈환했다. 또 육손은 촉 유비의 거국적인 침공을 잘 막아내었다.

그러나 손권에게도 실책은 있었다. 위를 공략하고 있던 촉의 관우를 기습하여 형주를 빼앗고 그를 참수한 것은 국지적인 안전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결코 잘한 처사라고는 볼 수 없다. 오와 촉은 합심해서 강대국인 위를 견제하는 것이 순리였기 때문이다.

지방정권이 장래를 내다보지 않고 눈앞의 안전만을 도모한다면 결국은 망하고 만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촉의 제갈량이 앉아서 망하기보다는 꾸준히 중원을 위협하면서 생존의 활로를 찾으려고 한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또 있다. 수성의 명군도 늙으면 필부(匹夫)가 되는지, 집권 말기에 후계자 선택을 잘못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장남 손등이 요절하자 왕부인 소생의 장남 손화를 태자로 세웠다가 차남 손패를 총애하는 등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에는 번부인 소생의 어린 손량을 후계자로 삼았던 것이다.

조조 또한 후계자를 선정할 때 장남 조비와 시문에 뛰어난 셋째 조식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지만, 사정(私情)보다는 대의명분을 중요시하여 결국 장남에게 대통을 물려주면서 위기를 벗어나지 않았던가.

수성의 명군으로 불리는 손권이 후계자 선정에서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흔들리는 바람에 조정의 국론을 분열시켜 결국 오나라가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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