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외국 회사에서 나온 초콜릿인데 값이 서로 22%나 차이가 납니다. 같은 외국 상표 옷이라도 누구에게 사느냐에 따라 값 차이가 큽니다. 같은 회사가 생산했고 같은 상표를 단 상품이라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업체에 따라 값 차이가 크게 납니다. 무슨 일일까요?



산업재산권(특허, 상표, 디자인)에는 특허 독립원칙이 적용됩니다. 각 나라에서 권리는 서로 독립이다는 원칙이죠. 프랑스와 한국 상표 관계를 보기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프랑스에 상표권를 갖고 있다 할 때, 이 사람은 한국 특허청에 등록한 상표권을 가져야 우리나라에서 독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다른 사람이 상표권을 갖고 있다면, 그 프랑스 상표를 달고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프랑스 상표와 한국 상표는 서로 독립입니다.



어느 정도 유명상표이면 프랑스 상표권자가 우리나라에도 상표권(한국 상표권)을 갖고 있습니다. 독립원칙에 따르면 한국 상표권자만 그 상품을 수입할 수 있습니다. 한국 상표권자가 독점 수입하기 때문에 값이 상당히 비쌉니다. 이때 국내에 상표권이 없는 사람이, 프랑스 상표를 단 상품(정품)을 프랑스에서 사서 국내에 수입하여 팔아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진정상품 병행수입’문제입니다. 상표 독립원칙을 지킨다면 허용되지 않습니다.



외국 진품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해외 상표권자와 독점 계약을 맺은 한국 총판점이 수입하는 것이고, 둘째는 수입업체(상표권자가 아님)가 프랑스에서 정품을 사서 국내에 들여오는 것입니다. 독립원칙을 따르면 둘째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정품을 상표권자만 수입할 수 있고, 정품이더라도 딴 사람이 들여와 팔면 상표권 침해가 된다는 것인데, 독립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려니 이상합니다. 어느 쪽이든 다 진품인데!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정품을 샀다면 이미 상표권은 없어졌으므로(소진 消盡) 더는 상표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논리가 나왔습니다. 이 논리를 적용하여 상표권의 효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정상품 병행수입’입니다. 소비자 권익을 고려하여 나온 이론이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병행수입이 허용되면 소비자는 진품을 상표권자나 독점대리점(총판점)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병행수입 보기를 더 들어보죠. 샤넬 본사가 한국 총판점인 ‘한국샤넬’에게 ‘샤넬’ 상품을 독점 수입할 권리를 주었습니다. 수입업자는 다른 경로로 진품을 사들여와 국내시장에서 팔거나, 유통업체에 납품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인터넷 장터에는 병행수입한 상품이 많습니다. 대형 유통망과 자본력을 갖춘 국내 대형유통업체도 진품을 직수입하여 파는 일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병행수입이 허용되면 진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판매자는 진품이라 주장하지만 정말 진품인지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은 관세청이 통관인증제를 보완하고 있다 하니 개선될 것 같습니다. 한편 사들인 상품에 문제가 있을 때 교환, 수선, 보상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국내 총판점은 광고나 영업활동을 하여 제품 시장을 키우고, 수리 보상 체계를 마련했는데 자기가 팔지도 않은 병행수입상품을 수리하거나 보상해 줄 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 일이 생기면 병행수입품을 산 소비자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상표권자인 국내 총판점과 병행수입업자 사이에 상표권 침해를 둘러싸고 미묘한 싸움이 자주 벌어집니다.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것이 상표권제도의 예외에 속하는 일이어서 그렇습니다. 상표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총판점은 상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병행수입업자는 상표권 칼날을 벗어날 수 있는 범위를 잘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 범위는 주로 판례에 따라 정해집니다.



병행수입을 둘러싸고 말과 탈이 많습니다. 정부는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는 등 장점이 있어 앞으로 병행수입을 활성화할 생각인가 봅니다. 좋든 싫든 병행수입품이 더 넘칠 것입니다. 국내 상표권자(총판점), 병행수입업자, 소비자 모두 병행수입품에 허용되는 범위와 장단점을 잘 알고 움직여야 합니다.




고영회



1958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석사(1998),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자격이 있다. 대한변리사회 부회장과 대한기술사회장을 지냈고, 지금 성칭특허법률사무소(www.patinfo.com)대표, 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를 맡았다. '한글 바로쓰기, 우리 것(고유문화, 예술, 사상)제자리 찾기, 과학기술자 제대로 대우하기'에 관심이 많다. mymail.patinfo.com




[자유칼럼그룹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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