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새삼스레 ‘통일’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적 갈등과 분란이 자심한 마당에, 남북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는 터에 다소 엉뚱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잊을 만하면 공연히 핑계 김에 꺼내 드는 구두선인지, 장좌불와 참선 끝에 집어든 화두인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인사회에서 “올해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해 통일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6일 신년 구상 기자회견에서는 “내년이면 분단 70년"이라며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부딪쳐온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외교·안보 및 평화통일 문제만큼은 언제나 협력할 준비와 자세가 돼 있다”고 호응했습니다.


때마침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남조선 당국은 조국 통일을 요구하는 겨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북남 관계 개선에로 나와야 한다”고 말한 참입니다.


통일이 우리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을지, 어느 날 누구도 손쓸 새 없이 벼락같이 이루어질지, 아직도 까마득히 먼 이야기일지, 여전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남북이 똑같이 통일을 노래하지만 각기 처한 상황을 보면 그 방향을 일치시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과 북의 구성원, 각 계층의 통일 계산법도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변함없이 우리 겨레의 염원이 되어 있습니다.


남과 북의 대표들이 어깨를 걸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목이 터져라 합창하던 1990년 늦가을이 다시 생각납니다. 평양에서 처음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환영회장에서였지요. ‘우리의 소원’은 1947년 서울 중앙방송국의 삼일절 기념 노래극을 위해 아버지 안석주(安碩柱, 1901~1950)가 가사를 쓰고 아들 안병원(安丙元, 1926년~)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그것이 어느 결엔가 남북 7천만 겨레의 국민가요가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노랫말 가운데 ‘독립’이 ‘통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2절처럼 절로 따라 나온 노래가 이원수(李元壽, 1911~1981) 시에 홍난파(洪蘭坡, 1898~1941)가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이었습니다. 모두가 잃었던 고향을 되찾고 헤어졌던 형제를 다시 만난 것 같았습니다. 통일의 꿈에 취해 그날 밤은 영원히 새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분위기로는 지금쯤 벌써 통일의 문턱을 넘어 있어야 하는데 남과 북은 여전히 남보다 더 사나운 눈으로 서로를 흘기고 있습니다.

통일이 정말 우리 겨레의 소망인가요? 진정 모두가 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동서, 좌우, 세대, 사제 간 소통과 이해의 부족으로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 빚어지는 판에 남과 북이 소통하고 통합하는 큰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내 입을 닫고 귀를 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제 입은 한껏 열고 귀는 닫아걸어 놓으면서, 제 것은 양보 않고 남의 것을 탐하면서 소통 부재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통일에는 더욱 큰 이해와 양보가 필요할 것입니다.


소위 통일 전문가들은 남북통일이 평화의 토대 위에서 한민족이 끝없이 발전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당장 남한의 20배에 이르는 북한의 광물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인구 7천만 명 이상의 안정적 내수시장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월가에서는 북쪽의 노동력과 천연자원, 남쪽의 자본과 기술, 경영능력의 결합이 통일 한국의 경쟁력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는 박 대통령의 말이 허언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지난 연말 통일 의식에 관한 한 여론조사에서는 ‘남북통일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이 조사 대상자의 19.9%에 그쳤다고 합니다. 10년 전 같은 설문에 대한 응답 40.9%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입니다. ‘10년쯤 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은 48.0%에서 60.9%로 올라갔습니다. ‘통일보다는 현재대로가 낫다’는 응답은 놀랍게도 16.8%,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 같은 부정적 응답은 통일에 따를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누리는 지금의 안락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때 4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꼽았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광복과 건국은 통일을 이룰 때 완성된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연말 정부는 남북한 법률 통합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통일 법제 관계부처 협의체’를 만들고 올해 초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공감할 만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개성공단을 어렵게 재가동시키고 이산가족 만남을 재추진하는 정도?


통일 기반의 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통일이 왜 필요한지,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지, 통일의 의의와 방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앞서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집권세력의 교체나 정치 상황의 변화에 구애됨이 없이 문화, 체육, 학술 등 비정치적 분야부터 점차 교류의 폭을 넓혀 남북 공통의 정서를 찾아가는 실질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개성공단에서 비롯된 ‘3통(통행ㆍ통신ㆍ통관)’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비로소 통일 기반의 구축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의 경제적 효과나 통일이라는 거대 목표를 대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작금 한반도를 에워싼 험악한 공기가 통일이야말로 최후의 안전보장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의 거칠고 불유쾌한 입김을 쐬면서 더욱 통일된 나라의 강화된 국력이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체육부장, 부국장, 경영기획실장과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을 역임했다. 여러 차례의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등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의 현장을 취재했고, 국제스포츠이벤트의 조직과 운영에도 참여하며 스포츠경기는 물론 스포츠마케팅과 미디어의 관계, 체육과 청소년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된 글들을 집필해 왔다.

[자유칼럼그룹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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