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5월12일부터 5월23일까지 동유럽8개국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동행하지 못한 내 아내에게 이 글을 남긴다.

2011년 5월13일 밤 0시 50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한 카타르 도하 행 비행기는 장장 10시간 이상을 날아서 현지시각으로 새벽5시가 조금 넘어 도하공항에 도착하니 동틀녁 새벽인데도 사막의 모래바람은 한증막 같은 더위를 얼굴에 몰아친다.

공항터미널까지 상당히 먼 거리를 셔틀버스로 이동하여 우리나라 지방 비행장 같이 아담한 도하공항에 도착하니 비엔나 행 비행기는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면세점에서 구입한 조니워커 한잔씩 얻어 마시고 감기는 눈꺼풀을 참아본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향해 아침 8시 40분에 카타르비행기 QR095에 탑승한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반도의 사막 위를 지나 터키와 발칸반도상공을 거쳐 빈에 도착하니 시계는 오후2시15분을 지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우리 남한보다 조금 적은면적으로 유럽대륙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 13세기말부터 합스부르크왕가가 지배하기 시작하여 독일과 소련의 점령을 거쳐 1955년 독립주권국가로 탄생한 영세중립국으로 인구는 약 840만 명이고 국민소득은 약 45,000$정도로 부유한 나라에 속한다.

이 나라의 수도 빈은 BC500년경 켈트족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도시로 1440년 합스부르크왕가 때 정치 문화 예술 과학과 음악의 중심지로 발달하여 1805년 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 신탁통치를 거친 후1954년 독립과 동시에 다시 수도가 되었다. 빈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석유수출기구(OPEC)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중요한 국제기구들의 본부가 있다.

우리일행은 공항을 나와 기다리던 슬로바키아출신의 버스기사 말란미로에게 박수로 인사하고 시내로 들어가는데 도나우강의 운하를 따라난 길은 오월의 푸른 가로수들이 도열하고 날씨는 화창한데 빈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형도로 링거리에 들어선다.

나폴레옹이 이도시를 정복하여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1854년 800년 된 성벽을 허물고 지금의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단다. 시내의 건축물들은 모두 1800년 이후에 지은 집들이며 200년이 넘는 집들도 있고 1897년에 처음으로 전차가 다니기 시작 했으며 길은 대부분 one way로 3차선이고 길 양쪽으로 전차가 다닌다.

링거리를 둘러본 우리는 쉔부른 궁전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이 궁전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주인공인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의 딸 마리앙투아네트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 따 지은 궁전으로 1441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18세기 후반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중국의 자기나 칠기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녀의 남편이자 황제인 슈테판공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예술이나 과학에 관심이 많아 국정운영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섭정하게 되었고 부부사이가 좋아 슬하에 16명의 자녀를 두었단다.

스테판성당을 보러가는 길에 빈에서 가장 화려한 케른트너거리를 들어서니 세계3대 극장 중의 하나인 국립오페라극장과 미술아카데미건물, 괘테 동상, 국회의사당건물 등이 보인다.

이 나라는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어 대학까지 무상교육이고 의료제도가 완벽하나 의료보험료의 부담이 크단다. 특산품으로 가이그라는 특수 가공하여 아주 얇은 옷인 양모제품이 유명하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행해진 성 슈테판사원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 슈테판의 이름을 딴 것이란다. 지고지선의 신에게로 향하고자 하는 절대적 신심의 상징인 고딕양식으로 137m의 첨탑과 25만개의 벽돌로 만들어진 이 사원은 빈의 魂이라고 부를 정도로 빈의 상징물이란다.

1450년에 만든 지하유골 안치소 카타콤에는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유골 약2,000구와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의 유해 가운데 심장 등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 및 백골이 쌓여있단다. 정작 성당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성당주변을 돌다가 비엔나에 왔으니 비엔나커피나 맛보려는데 가이드가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단다.

비엔나커피의 정체는 아인슈패너 커피를 말하는데 옛날 카페로 들어오기 어려운 마부들이 한손에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에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차위에서 마시게 된 것이 시초였는데 여기 사람들은 멜랑쉬라고 부르기 때문에 비엔나커피를 달라면 못 알아듣는다는 설명이다.

저녁식사로 호이리게라는 정식이 나오는데 소세지 같은 것이 얼마나 소금에 절였는지 도저히 짜서 먹을 수가 없어 허기만 간신히 면하고 숙소로 자리를 옮긴다. HOTEL에 짐을 풀고 오늘의 일기를 쓰고 잠을 청한다.

조덕찬
- 여행칼럼니스트
- 신한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68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