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여포는 희대의 명마인 붉은 적토마(赤兎馬)를 탔고 항우는 검은 털과 흰털이 섞인 용맹스런 오추마(烏騅馬)를 탔습니다. 실제로 황마, 흑마, 백마, 적마는 있습니다. 하지만 청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청마의 해라는 것은 예로부터 천간지지(天干地支)를 통해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려 했던, 우리의 마음으로 보는 관념적 상징체계에 기인합니다.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천간(天干)은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의 순서대로 오행의 목·화·토·금·수를 상징하며 파랑, 빨강, 황색, 흰색, 검정의 상징 색을 갖습니다. 땅의 기운을 말하는 지지(地支)는 12종류의 동물 자(쥐)·축(소)·인(호랑이)·묘(토끼)·진(용)·사(뱀)·오(말)·미(양)·신(원숭이)·유(닭)·술(개)·해(돼지)로 나뉩니다. 따라서 올해는 하늘의 기운인 갑(甲)과 땅의 기운인 오(午)가 만나는 갑오년이며, 갑의 상징색인 청색으로 청마의 해가 됩니다.


우리 민족은 이 청색에 대한 선호도가 높습니다. 청색은 동쪽 태양의 양기가 강한 색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청색이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나며, 살아가면서 청운의 꿈을 안고 미래의 청사진을 찍으며 앞날이 창창하기를 바랍니다. 청색은 늘 푸른 희망으로 살아 숨을 쉽니다. 하지만 소유에는 다른 희생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 파란 빛의 돌은 탐스럽습니다. 그래서 보석으로 쓰듯이, 광물에서 얻는 파란색 물감안료는 가격이 상당히 비쌉니다. 청금석이 그러합니다. 청금석이 내는 색깔 가운데에서도 수파르(surpar)는 ‘붉은 깃털’이라고 불리는 색입니다. 가장 좋은 파란색에 붉은 색의 수식이 붙는 것은 수파르가 옅은 자색이 돌기 때문인데, 일출이나 일몰에서 보면 더욱 이글거리듯 강렬한 파랑이 일품입니다.


이 파랑을 얻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광산에서는 폭약을 터트리며 250미터가 넘는 갱도를 구부리고 들어가 청금석 광맥을 찾아 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폭음에 귀청이 나갈 듯하고 바위 동굴에 맡긴 구겨진 몸은 돌먼지에 싸이고 상처투성이입니다만, 이 숨 막히는 갱도에서 눈부신 파랑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인도에서는 인디고 풀을 수조에 담고 하루 종일 발로 물질을 하여 염료를 뽑습니다. 더운 날씨 땡볕 아래에서 일꾼들은 파란색 거품이 형성될 때까지 호흡을 맞추며 발을 높이 들었다 뒤로 제치며 첨벙첨벙 고된 발길질을 합니다. 중세에는 파랑을 얻기 위해 염색 통에 대청을 넣고 물을 부은 후 알코올을 넣는데, 술이 아까우니 직접 술을 마신 후 그 오줌을 넣어 맨발로 밟아 악취를 맡으며 파란 색소를 만들었습니다.


수조통의 물이 점차 파란색을 띠어가면서 일꾼들의 몸도 파랑이 되어 갑니다. 일이 끝난 후 아무리 닦아도 그들의 손톱과 발톱은 오랜 염색노동으로 파랑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얼룩덜룩한 파랑은 마치 멍이 든 사람처럼 아파 보이고, 잠시 고된 발길질에 파란 몸이 되어 휴식을 취하면 누가 봐도 염색공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술 취한 사람을 파랗다고도 합니다.


인도 서부에 조드푸르(Jodhpur)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구시가지 건물 대부분이 인디고 블루로 칠해져 '푸른 도시'라 불리는 곳인데, 이 도시가 생겨났을 때 이주해 온 브라만들이 숭배한 시바 신의 상징이 파란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파랑을 만든 인도의 염색공은 파랑으로 힘겨운 삶을 지탱하지만, 모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독을 삼켜서 파란색이 되었다는 시바 신을 보며 또 다른 희망을 품을지 모릅니다.


또한 파랑은 기독교의 색이고 성모마리아의 색입니다. 독일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 뒤러는 청금석을 곱게 갈아 접착제와 섞어 만든 울트라 마린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색으로 표현된 파랑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작품을 제작하여 판매할 때는 울트라 마린 재료비를 따로 청구하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진 신성한 파란 색을 보며 종교적 엄숙함,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


청마의 해는 여느 해보다 파랑이 주는 수식 때문인지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염색공이나 광부와 같이, 우리에게 빛나는 파랑을 선사하기 위해 낮고 힘겨운 일터에서 고개 숙이고 일하는 희생이 있습니다. 파란 꿈,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혹시 내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모른 척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불편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변을 살피는 착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파랑은 넓은 하늘과 바다와 같이 평화의 색이고 그리움의 색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가득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 그런 파랑으로 빛나는 청마의 해가 되길 바랍니다.


안진의

한국화가. 홍익대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채색화와 색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화폭에 향수 사랑 희망의 빛깔로 채색된 우리 마음의 우주를 담고 있다.

[자유칼럼그룹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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