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모습에서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시나브로 유머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 한가하기도 하지, 돈 걱정, 건강 걱정, 가족 걱정이라면 모를까, 유머감각이 줄어든 것이 걱정이라니 하며 어이없어 하시거나, 자기가 무슨 유머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도 된다고 유머 타령이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어떤 분은 유머감각? 그거 익히는 게 뭐가 어려워.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게 유먼데, 인터넷에서 찾아 외우면 되지, 이렇게 말이야. 가장 짜증나는 개는? 참견. 가장 기특한 개는? 대견. 그럼 가장 위대한 개는? 발견. 이제 됐지? 하실 것 같습니다.


자랑입니다만 저는 원래 ‘한 유머’ 하던 사람입니다. 제가 끼면 저의 입담으로 대부분 ‘뒤집어’지곤 하기 때문에 자기들을 좀 웃겨 달라고 일부러 저를 부르는 모임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던 제가 요즘은 어딜 가도 구석 자리에서 존재감 없이 ‘찌그러’져 있다가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마치 어느 순간 치매기를 알아차리듯 유머감각이 녹슬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아 차린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단순히 말을 이리저리 비틀고 자르고 줄이고 늘이고 붙이고 꼬아서 하는 것 말고, 창조적으로 유머를 구사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유머란 재기 발랄, 반짝 반짝 기분이 고양되고 의욕이 항진되는, 이른바 약간의 조증(躁症) 상태를 외줄 타듯 유지하면서 활짝 열린 오감으로 주변 상황을 예리한 그물망으로 견인하는 감각을 유지할 때 최고조에 이른다는 것을요. 감수성의 벼린 날 위에서 튕기듯 우쭐우쭐 언어의 춤사위를 긴장도 높게 펼쳐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유머란 예술적 경지와 버금 가는 고도의 정신 역동이라는 것을요.


이처럼 창조적 유머는 내면의 기운이 생동하고 몸과 마음이 활기 있게 조응될 때 영혼이 씻음 받듯 발현되는 것이거늘, 작금 저의 상태는 전폭적으로 ‘맛이 가도 단단히 간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유머감각은커녕 가장 낮은 단계의 정서 자극에조차 둔감, 무감해질까 우려됩니다.


저는 이것을 몸과 마음이 외부와 잘 소통하지 못하면서 마침내 영혼에 더부룩한 가스가 찬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머는 ‘영혼의 상쾌한 방귀’ 같은 것인데, 영혼의 ‘변비’가 심해지니 방귀마저도 시원스레 안 나오는 증상이라고 할까요.


유머 중의 압권은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제 경험으로도 나의 결점이나 실수를 우스갯거리로 삼으면 그 자체로 안전하고 인간미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적절한 예가 될진 모르겠지만,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있을 줄 알았지).” 같은 류라 할까요.


그러려면 제 쪽에서 위기 상황을 웃음으로 넘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남들 앞에서 나를 가지고 놀기는 고사하고 남들이 나를 가지고 놀까 봐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심리적으로 자꾸 움츠러들고 자기 비하감에 시달리니 제 유머감각이 회생 불가, 급기야 사망 선고에 이른 듯 가슴이 아픕니다.


인간관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숨겨진 공격성을 완화하는 데는 유머만한 것이 없습니다. 불합리와 억지, 부조리함을 포용하는 태도, 극한 상황,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도 자신을 추스르는 유연성은 유머의 힘에서 나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삶에 대한 미의식이라고 할까요.


진정한 유머란 생의 ‘애드립’이기 때문입니다. 좌절, 모욕, 수치, 상실, 자책, 절망 등 방귀로 빠져 나가지 못한 영혼의 독가스에 짓눌려 생 자체가 ‘잠수를 타’버리는 것을 막으려면 유연하고 탄력 있는 유머, 즉 침잠하는 나의 서사에 한 방 애드립을 ‘때려 줘야’ 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지금 제 삶은 너무 무거워지고 진지해져서 도무지 웃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제 태도가 문제입니다.


무조건적 자기 사랑, 절대 현실 긍정으로 꿋꿋하게 버티지 못한다면 이대로 영영 유머감각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유머는 인생의 역경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라는 점에서 유머감각을 잃는다면 저로선 삶을 잃는 일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두려울 것 같습니다.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www.bistromeme.com)를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 학교, 중앙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공저<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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