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10)- '남한산성'…행궁산성으로 유명


한민족의 독립과 자주의 상징
남한산성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요새의 현장으로 한민족의 독립과 자주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 외국의 침략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대비하여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쌓은 행궁산성(行宮山城)이다.

남한산성의 총면적은 36.447㎢, 성의 면적 2.3㎢, 성의 둘레 11.76km,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소재인 남한산성은 성남시-하남시 등과도 접경을 이룬 곳이다.

본래 백제를 세운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으로부터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산성을 쌓은 것이 그 시초였다. 그 유적에는 7세기의 것들도 일부 남아 있지만, 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축성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때에 중국 청나라의 위험에 맞서기 위해 수시로 고쳐 쌓았다. 산성에 올라 한 수(首) 읊었다.

병자호란 때의 항전 본부
청나라 대항 47일 구국의 대혈전
그 열정 불길처럼 타오른 곳
한양 궁궐 대신한 피난처 행궁(行宮)
조선 인조 이래 숙종~고종까지 여섯 임금
능행 길에 머문 별궁이어라.

지휘관측의 수어장대
군신(君臣) 혼백 모신 숭렬전
삼학사 우국충절 기린 현절사
천혜의 요새 사적이어라.
남한산성은 스님들의 호국의지로 결집된 역사의 현장으로 유명하다. 스님들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승군(僧軍)을 조직한 곳이다. 스님들은 스스로 성을 쌓기 시작하였고 산성을 수호하는데 앞장섰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는 당시의 방어적 군사공학 개념의 총체를 구현한 성채로 한국 역사상 유일한 산악 군사도시이자 행정도시인 동시에 한국을 넘어 동양의 성곽 축성 발달사를 보여주는 표본 성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밀공법으로 축성한 산성
남한산성은 과학적이고도 매우 정밀한 공법으로 축성한 산성이다. 역사적으로 전해오는 여러 산성의 축성법을 참고하고 산성에 대한 광범위한 문헌 기록을 검토하여 토대로 삼고 성을 쌓았다는 점에서 그 우수성과 역사성이 돋보이는 산성이다.

더구나 문화유산의 요소 가운데 특히 목재를 사용하여 건축한 사찰이나 건축물에 대한 진정성과 보존문제 등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살려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더불어 과학적인 정통성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특히 19세기 일제 침략주의 강점기 아래에서 남한산성 안의 각종 시설물들도 엄청난 피해를 당해 불에 타 전소하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조선 제16대 인조 때에 쌓은 성은 길게 잘 다음어진 장대석을 받침돌로 하여 성 돌을 올려놓았는데, 장대석은 길이 50cm, 두께 30cm이고 성 돌은 너비 30cm, 두께 20cm 크기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기록을 모두 되살려서 옛 모습 그대로 되살리는 복원작업을 진행하여 다시 살려 냈다.

남한산성의 복원사업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오랫동안 면밀하게 연구하고 검토하여 수행한 끝에 성곽과 성 안의 행궁 등 여러 시설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그런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려는 노력과, 호국 의지, 역사 문화적 가치 등이 높게 평가되어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잠정 목록에 먼저 올랐다가,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남한산성은 경주, 개성 등에 이어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주요 문화재 둘러보기
현재 유형 및 무형문화재 총 218점이 역사적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남한산성의 주요 문화재를 둘러보는 일은 성곽과 여러 기념물을 포괄하는 전체 권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국가사적 제480호로 지정되어 있어 이에 따라야 한다.

남한산성의 4대문인 동문 좌익문, 서문 우익문, 남문 지화문, 북문 전승문을 통해 산성 안으로 들어서면 218점의 문화재 가운데 중심인 행궁(行宮)을 비롯하여 내행전, 외행전, 한남루 등이 행궁 권역을 둘러볼 수 있다. 관아 및 좌전 권역에는 좌승당, 일장각, 장전, 영령전 등이 복원되어 옛 모습을 보여준다.

온조왕의 왕성, 신라 문무왕 때의 주장성, 조선 인조 때 겪은 병자호란 당시의 행궁 역사들이 담겨있다. 수어장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집쾌정, 연무관, 지수당 등도 있다.

그 밖에도 불교 사찰인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국청사, 천주교순교 성지, 다양한 형태의 민간 종교 시설들의 문화재도 많은 복합 문화의 산성이다.

매 바위의 전설
남한선성 수어장대 앞마당 모퉁이에 ‘매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기이한 전설이 전한다. 이 성을 쌓을 때 동남쪽 지역을 책임 맡고 있던 이회 장군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에 그 원한이 서려 있다는 것이다.

이회 장군은 성을 쌓을 때 공사의 완벽함을 이루기 위해 하나하나 철저하게 점검하며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날짜를 넘기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사비용도 턱없이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다 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회 장군이 주색잡기에 빠져서 성 쌓기를 소홀히 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이회 장군에게 책임을 묻기로 하고 그를 참수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서장대 앞뜰 참수대로 끌려간 이회 장군은 참수를 당하기 직전에 하늘을 쳐다보면서 마지막 비장의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 몸에 죄가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의 목이 잘리는 순간 장군의 목에서 매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근처 바위로 날아가 앉아 슬피 울었다.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겨 매를 잡으러 가자 멀리 날아가 버렸고, 매가 앉았던 바위에 매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과연 이회 장군은 억울한 죽음을 당했구나!”

관아에서 이회 장군이 책임을 맡아 쌓고 있던 지역의 성곽을 조사해 보았더니 아주 견고하게 쌓아서 빈틈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죄를 사면해 해주고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그 뒤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매 바위’라고 불렀으며 바위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관리가 매 바위의 매 발자국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매 발자국이 난 부분을 도려내 떼어 갔다. 그래서 그 자리에 사각형의 흔적만 남아 있다.


산성의 역사성과 다양성
웅장한 산세와 아름다운 계곡, 수도권 최대의 자연 소나무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남한산성은 오랜 세월동안 지방의 도성(都城)으로 자리를 굳혀왔고 대(代)를 이어가며 살고 있는 주민이 거주하는 산성마을도 있다.

그래서 산성 안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보건진료소, 경찰관이 상주하는 치안센터, 역사관 등도 있으며 시내버스가 성곽 안으로 운행하는 특별한 곳이다. 그런 연고로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즐겨 찾아가는 야유회 겸 등산 및 관광 코스로도 유명하다.

본래 남한산성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30대 문무왕 때에 축성한 주장성의 옛터로 군수물자를 저장하는 특수 창고를 설치한 매우 중요한 요새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는 외성과 옹성을 갖춘 전형적인 산성으로 발전하였다.

인조 16년인 1638년에는 백제 시조 온조왕 묘를 건립하여 배향하였고 사직단, 성황당, 기우제단 등도 설치하여 정기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남한산성 동문 안에는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의 침입에 끝까지 저항할 것을 주장하다가 목숨을 잃은 척화파의 삼학사(三學士) 오달제, 윤집, 홍익한의 위패와, 좌의정 김상헌, 이조참판 정온의 위패를 배향한 한절사 사당이 있다.

남한산성의 산성 체계는 17세기 때 극동지역에서 발달한 방어적 군사공학 기술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본래 중국의 축성도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우리나라 산세와 지형에 맞게 고쳐서 축성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산성 도시 구축의 표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서구식 화약무기에 대비하여 산성을 구축한 독특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으로 문화유산적인 가치가 큰 곳이 남한산성이다. 때문에 남한산성의 중요성과 다양성, 그리고 완전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성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실과 방어적 역할이 함께 어우러져 빈틈없이 분명하게 전해오는 유서 깊은 상성이다. 그래서 산성으로서의 구조와 기술, 기능 등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문화유산의 특성을 충분하게 지니고 있다.





유한준

- 現 아동문학가, 시인, 저술가 활동
-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역임
- 前 종교뉴스신문 편집주간
- 前 뷰티투데이 편집국장
- 前 독서신문 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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