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닷새간 내린 비로 함경북도와 양강도 지역에서 138명이 숨지고 400여 명이 실종됐습니다. 이재민만 14만 명, 6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식수와 보건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핵무기 만들 돈이 있으면 자기 백성부터 먹여 살려야지! 공갈 협박할 땐 언제고 무슨 낯짝으로 도와 달라노?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이다” “할머니! 북한정권하고 주민들은 구분 해야지요. 저 사람들이야 무슨 죄가 있어요. 그래도 우리 민족인데 어려울 때 인도적 지원은 해야지” “누나 바보야? 왜 우리가 우리를 죽이려 하는 사람을 도와야 해. 설사 도와준다고 쳐. 핵폭탄이 무서워서 상납한다고 선전할 걸” “그만해라! 싸우겠다. TV꺼라! 밥부터 먹자”
추석연휴 어느 아침, 식탁에서 일어난 일이다.

BC 636년, 천자(天子)와 같은 성(姬)이라 하여 평소 같잖은 양반 행세를 하던 송(宋)나라 양공(襄公)이 홍수(泓水)에서 초(楚)나라와 대치하고 있었다. “적의 병사는 많고 우리는 적습니다. 적이 강을 건너는 지금이야 말로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공격해야 합니다” 양공의 이복형 목이(目夷)가 진언했다. “어찌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한 상대를 친단 말이오. 군자는 남의 약점을 노리는 것이 아니오” 양공이 점잖게 말했다. 초나라 군대가 드디어 강을 건너고 대열을 정비하느라 분주했다. “지금 공격해도 괜찮습니다” 목이가 참다못해 다시 말했다. “비록 내가 망국의 후손이라고는 하나 어찌 진용을 갖추지 않은 상대에게 진격의 북을 울릴 수 있겠소. 저들이 전열을 갖추길 기다립시다” 양공이 속 터지는 거드름을 피웠다. 마침내 전투가 벌어지고 송나라 군대는 전멸했다. 양공은 화살에 맞은 넓적다리의 상처가 악화되어 그 이듬해 죽었다.

역사는 다시 2000여년이 흘러 조선 중종 13년인 1518년, 국경일대서 노략질을 일삼던 여진족 추장 ‘속고내’가 압록강을 건너와 사냥을 하고 있다는 첩보가 조정에 보고되었다. 병조판서 유담년 등이 정예 병력을 보내 ‘속고내’를 기습‧체포한다는 작전을 세우고 있는데 조광조가 입궐했다. “속고내가 지금 당장 변경에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냥하러 왔을 뿐인데 그를 잡는다는 것은 명분이 없고, 설사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사절을 보내 죄를 물은 다음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정도(正道)이지 몰래 기습하는 것은 도적의 술책입니다. 오랑캐도 사람의 마음은 있는 것이니 성의로 대하면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군자의 도리를 설파하자, 영의정 정광필이 “조광조의 말은 유자(儒者)로는 지극히 합당하나 여진족에게는 제왕의 법도가 통하지 않는 법입니다”라며 현실과 이상의 다름을 간언했지만 중종은 조광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속고내’ 기습‧체포 작전은 취소되었고, 사냥 잘 하고 잘 놀다간 ‘속고내’는 그 후에도 수시로 변방을 노략질했으며, 100여년 뒤 ‘속고내’의 후손들은 조광조의 성심(聖心)을 ‘삼전도의 치욕’으로 되돌려 주었다.

이번엔 좀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자. 생물의 생존전략 중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으로 평가받는 것에 호혜적(互惠的) 이타주의(利他主義)라는 것이 있다. 어떤 종류의 새에게 새로운 병을 옮기는 매우 더러운 진드기가 기생하고, 이 새에게는 그 진드기를 빨리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진드기가 머리 꼭대기에 있어 자기 부리로는 긁지를 못한다.

이때 A, B, C 세 종류의 개체가 있다고 하자. A(봉, sucker)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대라면 누구에게나 털 손질을 해주는 개체고, B(사기꾼, cheater)는 상대가 이전에 자기의 털을 골라 주었던 개체는 물론 누구에게도 일절 털 손질을 해 주지 않는 개체, C(怨恨者, grudger)는 처음 대하는 상대와 이전에 자신의 털을 손질해 준 개체에 대해서는 털 손질을 해 주지만 그를 속인 적이 있는 상대라면 원한을 품고 그 개체의 털 손질을 거부하는 개체다.

이 세 개체에 대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A(봉)는 B(사기꾼)의 무정한 착취로 절멸하고, B(사기꾼)는 최후의 A(봉)가 사라져 버릴 때 그 수가 정점에 이르다가 더 이상 착취할 대상이 없어지면서 서서히 사라지다가 마침내 절멸하고, 마지막으로 최후에 살아남은 것은 C(원한자)였다.
결국 생존가치를 최적화 하는 자연의 선택은 공갈‧협박‧거짓말로 남을 등쳐먹는 무뢰배도 아니고, 아낌없이 항상 퍼 주기만 하는 천사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밥도 다 먹었으니 이제 북한의 수해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가속화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의 수해복구 지원을 거론한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수해복구는 우리가 해줄 테니 너희는 부지런히 핵무기 개발에나 신경 쓰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입장과 ‘인도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는 분리해야 한다. 정부가 반대를 하더라도 동포의 아픔을 눈뜨고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범국민 모금운동이라도 전개 하겠다’는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나는 반대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지원할 때가 아니다. 해방이후 최대의 수재로 수백 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수십만의 이재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수백만 달러를 들여 핵실험을 하는 곳. 홍수가 발생한지 보름이 지나도 현장을 방문하지 않던 최고 지도자가 미사일 엔진 실험에 참관하여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북한이다. 더 이상 어쭙잖은 양반타령의 양공(襄公)이 되어서도, 천상의 도덕사회를 꿈꿨던 조광조가 되어서도, 물색없는 호구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애와 동포애가 차고 넘쳐 도저히 주체할 수 없다면, 까짓 컵라면‧방한복‧비닐장판‧의약품 등 등 모두 지원하자. 없으면 사서라도 지원하고, 돈이 필요하다면 모르는 척 적당히 찔러주자. 2~3천명 올라가서 노력봉사도 보태자. 수해나고 나서 오히려 부자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해보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말하다보니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만약 김정일이 핵을 개발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던 어느 정치 지도자의 대북정책과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북한이 올해 안으로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완료하겠다고 한다. 최근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으로 볼 때 완전 불가능한 허장성세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실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ou)는 “갈등하는 두 나라 중 한 나라는 핵무기가 있고 다른 한 나라는 핵무기가 없는 경우, 핵무기가 없는 나라는 대들다 죽든가 아니면 미리 항복하는 방법 등 두 가지 옵션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겨우 수해지원을 두고 갑론을박했던 게 얼마나 가소로웠던가 하는 것을 느낄 때가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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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장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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