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에세이] 요즘에는 난방과 취사가 대부분 도시가스로 이루어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탄이 난방과 취사의 주요 수단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신문 사회면의 기사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되었다가 재방송도 자주 하는 ‘응답하라 1988’에서도 연탄가스 중독 때문에 동치미 국물을 먹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탄에 불을 붙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착화탄, 즉 우리가 번개탄이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번개탄은 말 그대로 빠르고 순간적으로 불이 붙습니다. 연탄이 무기질 덩어리였다면 번개탄은 폐목재분, 톱밥, 왕겨, 기타 첨가물을 혼합 성형해서 만든 것으로 성냥불만 갔다 대면 순식간에 번개탄 전체에 불이 붙도록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야외 캠핑용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번개탄은 순간 발화되면서 다량의 일산화탄소를 발생시킵니다. 그 일산화탄소 때문에 번개탄이 언제부턴가 좋지 않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살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당국에서는 번개탄의 판매 규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번개탄을 아예 생산 중단하고 대체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 번개탄을 판매대에서 쉽게 보이지 않게하고 구매 시에는 장부에 개인정보 기재를 의무화하는 등 판매절차를 까다롭게 하겠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한 번개탄 포장지에 '생명은 소중합니다'라는 문구와 상담번호를 기재하여 자살시도를 예방하는 방안은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번개탄과 자살예방이 떠오른 것은 퇴직공직자 전용 인터넷 홈페이지를 검색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퇴직공직자들이 전에 근무하던 기관의 소식도 궁금하고 퇴직자들 간의 소통의 장으로 애용되고 있는 ‘징검다리’라는 이름의 인터넷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퇴직자들이 자주 애용하는 공간 중의 하나인 직원배치표와 인사이동 내역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삭제되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와 악용소지 차단의 목적으로 추측되기는 하지만 여기에 항의하는 자유게시판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34년 근무 꼬박 채우고 나이 60에 정년퇴직하고 직원배치표도 못 보는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심한 생각이듭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조치를 아무런 통보나 알림도 없이 하루아침에 없애는 직장에 다녔다는 것이 정말 뭐가 올라오는 느낌이네요', '현직에 계시는 분들도 언제 퇴직할지 모릅니다. 부디 현직에 있을 때 배려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세요,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합니다', '인터넷을 탈퇴합니다' 등등.


공급자 위주의 발상들은 많은 수요자들을 섭섭하게 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자살방지용 문구를 포장지에 넣겠다는 발상을 한 사람들이 수요자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았는지 궁금합니다.

번개탄 구입자의 대부분은 자살과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살예방용 문구를 읽어야만 하는 자살과 무관한 대부분의 사람들 기분은 어떠할까요?

자살예방용 문구를 번개탄 포장지에 넣는다면 또 다른 자살 도구인 노끈이나 넥타이 포장지에도 그런 문구를 넣어야 할까요? 또 자살에 쓰이는 나뭇가지에도 그런 문구를 기재해 놓는다면 어떨까요? 퇴직자용 인터넷 공간에서 직원배치표와 인사이동 내역이 삭제된 것을 보면서 자살방지용 번개탄 포장지 문구를 떠올린 것이 논리의 비약이라면 용서를 구합니다.

다만, 우리가 항상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마음에서 적어 보았습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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