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후면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막됩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순위 5위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특히 반가웠던 것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등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은 금메달 4개 이상을 획득해 연속 2회 톱10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38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우리는 88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2002년에는 월드컵을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됩니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순위 5위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비록 국제무대에 등장한 역사는 짧은 편이긴 하나 우리나라는 이제 하계 올림픽뿐만 아니라 동계 올림픽에서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스포츠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터넷에는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 대한 한국과 서양 해설자의 내용을 비교한 글이 떠돌고 있습니다.


한국: "저 기술은 가산점을 받게 되어 있어요."


서양: "나비죠? 그렇군요 마치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는 나비의 날갯짓이 느껴지네요"


한국: "코너에서 착지 자세가 불안정하면 감점 요인이 됩니다."


서양: "은반 위를 쓰다듬으면서 코너로 날아오릅니다. 실크가 하늘거리며 잔무늬를 경기장에 흩뿌리네요."


한국: "저런 점프는 난이도가 높죠.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서양: "제가 잘못 봤나요? 저 점프! 투명한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천사입니까? 오늘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와 이 경기장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고 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네요"


한국: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금메달이네요! 금메달! 금메달!"


서양: "울어도 되나요? 정말이지 눈물이 나네요. 저는 오늘밤을 언제고 기억할 겁니다. 이 경기장에서 유나의 아름다운 몸짓을 바라본 저는 정말 행운압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2010 밴쿠버 올림픽을 중계한 한국의 방송사와 유로 스포츠(Euro Sports)채널의 독일 중계를 비교해서 올린 내용입니다. 이 글에는 성적 지상주의, 금메달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이 많이 달려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 김연아의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보다 더 높은 클래스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연기를 감상하는 것에 중계의 초점을 더 맞춰야 했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하지만 당시 온 국민은 김연아 선수가 실수 없이 경기를 잘 마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경기를 감상하기에는 우리의 감정이 너무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계를 하는 캐스터나 해설자도 여느 중계 때처럼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김연아 경기의 해설을 놓고 서양의 중계와 비교를 하는 것이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눌러왔던 ‘1등 지상주의’와 ‘결과를 우선’하는 풍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집니다. 점수에 의해 등수를 정하고 대학의 간판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보니 김연아 선수의 그 아름다운 경기 모습도 점수화해서 보게 된 것 아니었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중계를 하는 데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2013 골드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김연아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다른 선수들을 폄하하는 듯한 태도로 물의를 일으킨 중계방송이 그러한 예입니다. 물론 우리 선수가 더 사랑스럽고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한 겁니다만 다른 선수에 대한 배려가 함께 있어야만 우리 선수를 아끼는 마음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김연아 선수의 성장과정을 쭉 지켜보았으며 이번 동계올림픽에도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중계할 SBS 배기완 캐스터의 얘기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두 그 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입니다. 경기를 지켜보실 충분한 이유가 있는 선수들이고, 올림픽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존중 받아 마땅한 선수들입니다. 국적을 떠나서 선수들이 잘하면 박수 쳐주고 실수하면 같이 마음 아파해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친김에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는 캐스터로서의 감회와 마음가짐을 들어봤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때, 김연아는 이미 세계 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없었어요. 세계 랭킹 1위 선수지만 유독 올림픽에서만 불운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김연아의 마지막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었어요. 피겨스케이팅은 워낙 섬세한 운동이라서 점프 동작에서 착지가 불안하면 큰일이거든요. 중계를 하면서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는 다르죠.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뤘고 우리는 보너스로 한번 더 김연아의 경기를 올림픽에서 보게 된 거거든요.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김연아는 세계 최고 선수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김연아는 확실히 달라요. 이번에는 경기를 즐기면서 보실 수 있도록 잘 유도할 겁니다. 저는 이번 중계에서 우선 경기장의 분위기를 상세히 전달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김연아의 경기를 숨죽이면서 지켜볼 겁니다. 김연아가 경기를 하는 도중에는 시청자께서 집중해서 보실 수 있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다시 화면이 플레이될 때 각각의 동작에 대해 설명과 해설을 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움을 잘 감상할 수 있게 중계할 겁니다.”


배기완 캐스터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이제 김연아의 경기를 제대로 감상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보게 되겠지만 보다 느긋하고 성숙한 마음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연아는 유로스포츠의 독일 해설자가 표현한 대로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메달 색깔에 대한 조급함으로 김연아의 환상적인 연기를 점수로만 따지는 것은 이제 좀 촌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1970년대 우리는 김일 선수와 안토니오 이노키의 레슬링 중계를 보며 반일 감정을 쏟아내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또한 파나마에서 열린 WBA 복싱 세계챔피언 결정전에서 홍수환이 보여준 4전 5기 신화를 통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아시안게임 여자 장거리 육상에서 3관왕을 기록한 임춘애을 통해 헝그리 정신의 승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88올림픽에서는 종합순위 4위를 달성했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4강 신화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이기면 무조건 좋았습니다.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되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경기의 내용이 결과보다 더 중요하고 우리 선수뿐만 아니라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줄 것을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방송사도 감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결과와 순위보다는 경기 그 자체를 즐기고 감상하는 방향으로 스포츠 중계의 패턴이 바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순위에 구애 받지 않고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스포츠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美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업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모닝와이드'담당

[자유칼럼그룹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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