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에세이]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 중의 하나가 명절인 설과 추석을 전후한 자동차의 귀성 행렬로 인한 도로 정체나 기차표 구입 모습일 것입니다.
 
언론에서도 귀성 전쟁이라 표현할 정도로 명절의 귀성 의무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은 듯합니다. 중국에도 춘절 등 명절에 귀성 전쟁을 한다고는 하나 여러 도시가 아닌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전국에 일제히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유일한 듯합니다.
 
그런데 이북이 고향인 어느 선배에게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갔다 오는 길이 힘들다고 하소연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선배는 명절 때 고향 찾아 갔다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며 귀성 행렬에 끼어 보는 것이 평생 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배의 말을 듣고 ‘의무감이 주는 것이 스트레스인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매년 봄이나 가을이 되면 시골의 종갓집에서는 시제(시사)를 올리는 집안이 많이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종중이나 문중간의 단합 의식도 옅어지면서 최근에는 시제행사를 하는 경우가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제사도 예전에는 4대 봉사라고 하여 고조할아버지까지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돌아가신 전날 밤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에는 부모님 제사만 지내거나 일 년에 주말 한 날을 택하여 한 번에 지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시제나 제사 풍습도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필자는 종손으로서 할아버지 대 까지는 기일을 지켜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 위의 조상들께는 매년 가을에 집안 시제를 챙기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종손으로서 이러한 의무감이 귀찮다기 보다는 의무감이 주는 즐거움 또는 기쁨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으면서 가족이나 친구, 친지들의 모임에 회장이나 간부를 맡아 의무감을 가지고 챙겨야 할 모임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무감을 가질 위치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사하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고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나를 필요로 하고 나의 참석을 바라며, 참석하지 않으면 섭섭해 할 사람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의무는 우리 삶에 의미와 리듬을 더해주는 일종의 정신적 버팀목이요 나를 다른 사람들의 삶과 묶어주는 끈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의무감을 갖는 건 기쁜 일일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내게 의지하고 신뢰하며 기댄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이는 나도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들에게 기대고 신뢰하며 의지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말 시제를 챙기러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599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