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만에서도 중·고교 역사 교과서 개편을 두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교육부가 현행 교과서 내용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용어나 문맥을 헌법 규정에 따라 바꿔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대만 자체의 문제점이면서도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는 역사 교과서 논란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논점은 국호(國號)에 관한 것입니다. 교과서에 자신의 정식 이름인 ‘중화민국(ROC=Republic of China)’ 대신에 관습적으로 ‘대만(Taiwan)’이라는 용어를 써 왔고, 오히려 헌법상 적대국인 ‘중화인민공화국(PRC=People's Republic of China)’을 ‘중국(China)’으로 호칭하는 것이 잘못됐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당연히 ‘중국 대륙(Mainland China)’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지침이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서 야당인 민진당과 교직원 및 학부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러는 교육부 청사 앞으로 몰려가 피켓 시위를 벌이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중국과의 통일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시키려 든다는 것이지요. 양안교류를 가속화하는 현 정부의 ‘탈(脫)대만-친(親)중국’ 정책의 일환이라는 주장입니다.

‘중국 대륙’이라는 표기가 어째서 통일정책의 일환으로 간주되는지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이번 논란은 그만큼 대만 사회 내부의 뿌리 깊은 갈등과 쓰라린 상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부모가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토착민인 ‘본성인(本省人)’ 사이의 마찰이지만, 타이베이와 가오슝으로 대변되는 북남의 지역갈등과 빈부갈등을 두루 포함하기도 합니다. 도농(都農)갈등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체가 바로 국민당과 민진당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국민당 정부는 ‘반(反)통일’, ‘반(反)독립’의 현상유지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경제교류를 통해 화해·협력 분위기를 이뤄가는 반면 민진당은 여전히 별개의 ‘대만 공화국(Republic of Taiwan)’ 설립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교 교육을 통해 중국과의 통일의식을 가르칠 것이냐, 아니면 대만 나름의 독립의식을 불어넣을 것이냐 하는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재 민진당 소속 정치인들이 시장, 현장을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교육부의 지침을 전면 거부하는 한편 조만간 소집되는 입법원 일정을 통해 개편안의 문제점을 집중 추궁하겠다고 벼르는 것이 그런 때문입니다.

이번 지침에서 과거 일본 식민지배 시절의 피해를 강조토록 함으로써 일본과 외교적으로 미묘한 긴장관계를 초래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그동안 통용되던 ‘통치’라는 단순한 표현을 ‘식민통치’로 바꾸고 종군 위안부들이 강제적으로 끌려갔음을 지적하도록 했습니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국공내전에 패배해 대륙에서 밀려났을망정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으며, 그 중화민국이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대체해 들어섰다는 점에서 당시 청일전쟁의 상대국이던 일본 지배에 의한 폐해를 강조하려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이해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동안 일본과의 유대를 은근히 미화하는 한편 과거 명나라나 청나라와의 관계를 일부러 무시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 왔던 민진당의 기본 노선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민진당은 대만의 역사는 대륙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쪽인 반면 국민당은 대만의 역사적 뿌리가 대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통일 추구냐, 아니면 분리 독립이냐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의 조치와는 반대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시절이던 지난 2007년에는 민진당의 독립추구 정책에 맞추어 교과서가 수정됐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전까지 대만 역사에 포함되었던 대륙의 역사가 따로 떼어져 ‘중국사(中國史)’로 분류되었으며, ‘해협 양안(兩岸)’이라는 표현이 ‘양국(兩國)’으로 고쳐지는 등 대만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신해혁명의 주인공인 쑨원(孫文)에 대해 ‘국부(國父)’라는 말을 뺀 채 그냥 ‘쑨원 선생’으로 표기토록 했던 것도 그때의 일입니다.

이 문제는 대만의 국가적 정통성과 정체성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대만 국민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바깥의 시각으로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정권 교체에 따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 대만 국민들은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야말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역사라기보다는 집권층의 정치적 입맛에 의해서 내용이 뒤집히는 것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대만 헌법에 따른다면 이번에 마련된 지침이 타당하다고도 여겨지지만 같은 헌법을 놓고도 과거 장제스(蔣介石)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어서 국민당 자체로도 일관성을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에 대한 인식부터가 달라졌습니다. 과거 적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지금은 마잉지우 총통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웃으며 만나는 것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회동 시기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에서 두 사람이 만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진당 내부의 인식 변화도 감지됩니다. 창당 이래 지금껏 견지해 오던 독립노선을 포기하고 중국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될 정도입니다. 비록 일부의 목소리이긴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이르다 할지라도 머지않은 시기에 국민당과 민진당 양쪽 진영에서 울타리를 허물고 새로운 사관(史觀)에 입각하여 역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외성인과 본성인 사이의 앙금과 양안 분단에 따른 피해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저서로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한국과 대만, 잠시 멀어진 이웃'(e-book)등이 있다.

[자유칼럼그룹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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