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년이 되었지만 정치는 되레 후퇴하고 있다. 최순실 스캔들의 진상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국민의 분노·불신·상실감은 정당하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수습은 이성적이고 민주적 절차를 쫓아야 한다. 사실여부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을 확대 재생산해 유언비어가 난무하거나 무분별하게 정권퇴진 투쟁을 벌이는 것은…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게 하는 막가파식 행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정치적·도덕적 기반이 무너진 정국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특검 수용 의사를 밝힌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히고,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른 선동이 아니라 ‘질서 있는 수습’에 합심해야 한다. 당면 과제는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정치권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가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주자들도 자신들의 유불리(有不利)를 따지기 전에 국난 앞에 헌신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정치혼란을 틈타 정권을 탈취하려는 불순한 정치인들의 행동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권도 최순실 스켄들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당은 집권세력이면서, 행정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의회 권력을 쥐고 있다. 야당도 정치적 반대 세력이지만, 국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를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청와대 2중대,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청개구리 행태의 악습을 되풀이해 왔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정치(政治) 대개조(大改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 야당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양새다. 정치권이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서 서로 싸움박질이나 하고 남의 뒷목잡기에만 몰두한다면 나라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국민도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의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경구를 잊지 말고 '질서 있는 수습'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반세기 성장 신화가 일거에 무너져 내릴 위기직전 상황이다. 실질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은 4분기 연속 0%대다. 생산·소비·투자가 동반 감소하는 '트리플 침체' 속에 마이너스 성장 전망까지 나온다. 수출도, 국내 GDP의 30%(매출기준)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 현대자동차의 실적 저조로 휘청대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9.5%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1300조 원의 가계부채는 폭발 직전이다.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바람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한파를 몰고 올 게 자명하다. 하루하루 살얼음 밟는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최순실 스캔들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허둥대고 있고, 관료들의 복지동면(冬眠)은 더 심해지고 있으며, '너 죽고 나 살자'식 정쟁은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대기업發 혁신 바람도 '순실 풍'에 묻혀버렸다. 이제 정치문제는 정치로 수습하되, 경제는 핵심 경제팀으로 구성된 비상 대책 기구를 즉각 가동해 국민에게 국정이 마비돼도 경제정책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를 중심으로 각 경제 주체들이 합심해 노동 등 각 부문 구조개혁에 진력해야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쉼 없이 추진돼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경제 리더쉽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국내 정국이 아무리 어려워도 안보가 흔들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북한은 핵실험 단계를 지나 핵무기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미 5차례 핵실험을 자행하고, 다양한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일각에서는 선제 · 예방 공격론까지 제기된 상태다.

이런 참에 최순실 스캔들로 외교 · 안보 공백 우려가 커지게 된 것은 심각한 일이다. 정치 · 언론 등 각계에 포진한 좌파들이 마음에 안 드는 외교 ·안보 사안에 '최순실 사업' 꼬리표를 붙여 반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한반도 안보의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상황이므로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의 차기 정부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우리 이익에 부합한 한미동맹·대북정책 문제 등을 협의해야 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대통령의 구심역할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어떻게든 한미동맹에 금이 가지 않도록 대미 협의채널 활성화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사드(THAAD)를 포함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문제 등 절박한 외교·안보 현안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와중에도 선거를 치르고 개헌도 했다. 그동안 많은 정치 격변을 겪었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6·10 민주항쟁은 6·29 민주화 선언으로 이어지면서 제도적 민주주의 틀을 만들었다. '87년 헌법체제'가 지금까지 30여 년간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근간이 된 것은 거리의 열기를 개헌이라는 성과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최근의 촛불 민심도 미래의 대한민국 발전과 민주주의 틀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국 상황이 어지러울수록 헌법의 원칙과 기본으로 돌아가 이를 극복해야 한다. 성역 없는 수사로 법치를 바로 세우고, 고통스럽더라도 편법에 기대지 않고 정도로 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어수선한 상황과 트럼프 집권 공백기를 틈타 북한이 불시에 도발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외교·안보 관계자들,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군은 튼튼한 안보가 국정 위기 극복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란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절대로 정국에 휩쓸리지 말고 안보태세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초유의 국정 혼란과 국가 리더십 표류로 허우적대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지혜다. 4반세기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과 원칙의 대의는 국가적 위기 극복에도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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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통일연구회 고문 고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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