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원전(原電) 밀집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가져 온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였지만, 국가 재난상황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상황인식과 위기관리능력이 영화를 보는 내내 목에 가시처럼 답답했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본다는 비난을 받을 지라도 몇 마디 하자면.....

“만 삼천 명의 목숨을 살리려다가 5천만 국민들이 전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주민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국무총리에게 “저에겐 만 삼천 명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습니다”라며 초동조치를 미루다 사태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그 나물에 그 밥’ 格인 국방장관도 “전시(戰時) 상황도 아닌데 군인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을 수 없다”며 반발, 병력 투입마저 좌절된다.

별 뾰쪽한 수를 못 찾은 대통령은 마침내 “정부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여러분! 저희 정부는 살아서 나오지 못할 그곳에 들어가서 복구 작업을 수행해 주실 지원자가 필요 합니다”라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

드디어 원전 하청업체 노동자 25명으로 결사대가 조직되고, 주인공의 영웅적 희생으로 재난은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이런 대통령을 ‘솔직한 대통령’ ‘가슴이 따뜻한 대통령’ ‘인간적인 대통령’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가적 공황상태를 불러올 수도 있는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 속에서 ‘정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말을 그저 ‘솔직해서 좋다’라고 받아드리는 것을 대범(大凡)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면 체념이라고 봐야 되나?

국가의 존망과 수천 만 국민의 생목숨이 백척간두에 놓인 위기일발·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사지(死地)에 보낼 수 없다’며 자원 봉사자의 출현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통령! 이런 대통령을 가슴 따뜻하고 인간적이라고? 혹시, 위기상황에서 항상 나타나는 '슈퍼맨' '배트맨''원더우먼''황금박쥐''짱가''로버트 태권 V'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탄핵정국이라는 ‘태풍의 눈’속에서 정유년(丁酉年) ‘대선(大選)의 해’를 맞다보니 웃고 말 일인데,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새해 벽두부터 너무 초(超)진지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도덕·정직·의리·명분·인정·공감·화합·눈물 등과 같은 감성으로 지도자를 선택하고 국가 대소사를 결정해왔다. 국가를 경륜할 역량이 부족해도,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리더로서의 철학이 어설퍼도, 국가의 존망이나 국민의 안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없어도, 명분에 어긋나지 않으면, 가슴이 따뜻하면, 내 편을 들어 줄 것 같으면 그런 인물을 선호해왔다. 영화 판도라의 강석호 대통령이 그런 인물일 것 같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중국 주석 시진핑·러시아 대통령 푸틴·일본 총리 아베, 한결같이 '자국 이익 최우선 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이른바 스트롱맨(strongman)들이다.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국정운영 스타일이다.

서울에서 불과 50여 Km 떨어진 곳에는 분단이후 44만 여 차례의 도발을 자행하고, 전쟁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도발만 해도 스무 차례 이상이 되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호전적 집단이 위치하고 있다. 이틀 전 신년사에서는 도무지 예측 불가한 그 집단의 30대 초반 패기머리 지도자가 핵무력을 중심으로 선제 공격능력을 계속 강화하겠다며 도발 위협도 불사했다.
국제적 힘의 균형이 재편되면서 세계적으로 리더의 덕목도 변하는 것 같다. 다가올 대선에서는 국가의 존속과 5천만 국민의 생존에 무한 책임을 지면서,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 추상같은 엄정함과 용기 있는 결단, 역사와 국민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한, 그런 대통령을 기대해 본다.

어둠을 밝히는 닭울음 소리와 함께 이제 판도라 상자에서 희망이 나올 차례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장석광


-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연구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21세기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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