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한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큰 키에 붙임성 있는 시원한 목소리,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맑고, 입가의 보조개가 예쁜 그녀는 “어른이 놀이터”라는 문화예술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놀이터라니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던 이 친구는 어느 날 자신을 스스로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생활 속에서 스트레스가 너무나 컸던 것이지요. 그녀가 얘기하는 ‘스스로를 돌봄’은 특별히 거창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시간을 정해놓고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한다거나, 몸을 풀어주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등 그저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일상적 지속 행위 안에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삶, 그런 단순함으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다니 시시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새록새록 발견하는 것은 바쁜 일상 속에 그런 평범함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내놓은 어른이 놀이터 프로그램도 그렇습니다. 몸 풀기, 마음 지켜보기, 노래하기, 춤추기와 같은 것들인데, 우리의 유년을 생각해보면 누구나가 했던 놀이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놀이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소통을 만들어가는 그녀만의 섬세한 시선과 따듯한 배려가 숨어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면에 있는 맑은 감성을 끄집어내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의 본질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입니다. ‘도리도리 까꿍’, ‘곤지곤지 잼잼’을 하며 눈을 맞추고 집중하며 엄마와의 놀이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놀이의 다양성 가운데 성장합니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인간이 되고 놀이를 통해 또 다른 인간들을 키워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면 놀이문화가 단순해집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노는 것일까요. 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래방 가고, 어른이라는 계층 대부분의 놀이문화라는 것이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셈입니다. 그래서 술이 없으면 대화가 재미없고 맹숭맹숭해서 노래도 못 부른다고 합니다. 다양한 놀이문화를 통한 성장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을 위해서 놀이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고 사용이 편리해야 합니다. 마음 같아선 아파트 단지에 어린이 놀이터와 시니어 센터가 있듯이 어른을 위한 진짜 '어른이 놀이터'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사실 놀이의 기본적인 조건은 일상성입니다. 예를 들어 스키를 타러 스키장을 가는 것은 일상적인 놀이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접근이 용이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도보로 30분 거리 내에 위치한 개방적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역 주민 센터, 기관이나 업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이의 기본적인 조건인 의무감에서의 해방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돈을 내고, 정해진 시간 즉 제한된 시간이 있다는 것은 진정한 놀이의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노약자만을 돌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어른도 돌봄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일상성과 의무감에서의 해방을 전제로 어른들이 이용하는 다양한 놀이 문화 공간 및 콘텐츠 개발이 꼭 필요합니다. 놀이를 통해 우리는 행복감을 성취할 것이며, 사회적 관계망을 다양하고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안진의

한국화가. 홍익대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채색화와 색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화폭에 향수 사랑 희망의 빛깔로 채색된 우리 마음의 우주를 담고 있다.

[자유칼럼그룹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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