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불꽃 3.1독립운동
일제 탄압에 항거한 자주독립의 열기

독립선언서의 의의와 결과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세계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한글로 번역, 중략>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다.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로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독립선언서 마지막 문장인 공약 3장의 낭독이 끝나자 학생들은 모자를 하늘높이 날리고 태극기를 흔들어대고 서로 부둥켜안으며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는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종로 거리로 물밀듯이 나와 광화문을 향해 걸으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종로 거리는 순식간에 만세의 함성과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였다. 평화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일제 군경은 총을 난사했다. 그 순간 만세 행렬은 아비규환이 되고 거리는 선혈로 물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만세의 함성은 시골 장터로 울려 퍼졌다. 일제는 2개 사단 병력을 풀어 무자비한 학살과 방화 작전을 감행하였다. 일제의 잔인무도하고 야만적인 만행은 3월 20일부터 4월 10일 사이의 20일 동안 가장 악랄하였다.

3.1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거족적으로 일으킨 민족의 항쟁이었다는데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독립운동의 배경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일 한국이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자주독립을 목적으로 일제에 항거한 거국적 독립운동이다. 이 해가 기미년(己未年)이라 기미독립운동이라고도 일컫는다.

독립운동이 일어난 배경은 한일합병이라는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부당한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과 의사(義士), 열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면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한 것이다. 이에 일제 총독부는 강력한 무단정치(武斷政治)를 감행하여 가혹한 탄압을 자행하였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말살하고 극심한 경제적 수탈로 우리 민족이 다시 일어날 기반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이즈음 제1차 세계대전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승리로 거의 굳어지자 1918년 1월 미국의 T.W 윌슨 대통령은 강화조약의 기본 조건으로 14개항의 원칙을 발표하였다.

그 조항의 중점은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였다.

민족자결주의는 세계의 피압박 민족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도 자극을 받아 독립하자는 여망의 기운이 일어나고 그 열기가 높아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일제의 강력한 통제와 감시로 민족자결의 열망을 키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일제의 감시와 탄압의 손이 덜 미치는 해외에서 조직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지역이 중국 상하이였다.
전국에서 독립운동 전개
3.1독립운동은 3일째인 3월 3일 고종 황제의 국장을 치른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어 거의 날마다 이어졌다.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고, 상인들은 철시를 하고,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였으며 관리들은 퇴직을 하였다.

이로써 전국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의 열기로 타올랐다. 김윤식, 이용직 등 정치가들은 총독부에 조선 독립 인정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최촉장을 제출하고, 장석영, 김창숙 등 유림들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와 함께 4월 23일 조선민족 임시정부 조직 포고문을 서울에서 발표하였고, 의친왕 등 구황족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참여하여 조선민족 대동단을 결성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무력행사를 펴면서 무차별 학살과 검거를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 가운데 가장 끔찍한 학살 현장이 바로 제암리를 비롯하여 화수리, 정주, 맹산, 강서, 대구, 밀양, 합천 등지의 대학살이다.

수원 제암리의 경우 어린이와 노인까지 무고한 백성들 1000여명을 교회로 몰아넣은 뒤 출입문을 닫고 창문을 통해 무차별 난사를 퍼붓고 불을 질러 모두 죽게 하였다.

더구나 16세 소녀로 독립운동의 열사가 된 유관순의 참살 등은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잊지 못할 참혹한 만행이었다.

독립선언서를 수정하고 공약 3장을 첨가한 한용운은 옥중에서도 <조선독립의 서(書)> 논문을 지어 외부로 보내 발표하여 일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열기를 뿜어댄 3.1독립운동은 4월까지 계속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국권회복 위한 민족의 저항
3.1독립운동의 의의는 우리나라 국권의 회복과 개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 식민탄압에 항거한 비폭력 투쟁이었고 민족문화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천명하였으며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민족 저항의 발로였다.
일제가 유린하고 탄압한 민족의 생존권과 주권의 회복을 위한 민족운동이라는 점과, 무력 탄압에 맨주먹으로 항가하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당했다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3.1운동에 참가한 총인원은 200만명을 넘어섰고 집회 횟수는 전국 218개 군 가운데 211개군에서 1500차례 벌어졌다. 희생된 사망자는 7500명이고 부상자는 1만 5961명이며,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은 무려 4만 7000명으로 나타났다.

독립을 외치는 우리 민족의 절규, 분노의 함성으로 하늘도 울고 땅도 통곡하였건만, 독립을 이루지 못한 비극으로 끝났다. 이 운동은 민족운동의 일원화, 대중화, 비폭력 투쟁이라는 원칙 아래 한국인의 정치적 자각과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천도교를 중심으로 기독교, 불교, 유교 등으로 포괄하여 독립운동의 주체가 일원화되었고, 지식층, 농민, 상공인 등이 민족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하나로 집약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민족교육을 통한 한민족의 자립 자각 정신이 싹트고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신교육 기관이 설립되고 물산장려 운동이 일어났으며 언론창달이 시작되었다.

3.1운동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수만 명의 목숨과 피와 땀이 대한민국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결국 3.1운동으로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남의 나라를 강탈하고 선량한 백성들을 노예처럼 탄압하고 소중한 자산을 약탈한 일본 제국주의는 지금도 반성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이런 태도는 그들이 아직도 침략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독립운동 전개
민족자결주의에 따른 독립운동은 상하이를 거점으로 미국, 연해주 등지에서 일어났다.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은 독립운동에 관해 새로운 전환기를 만들어주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여운형, 김철, 김규식 등이 협의하여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보내 한국의 독립운동을 호소하였다.

미국에서는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에서 안창호, 이승만, 정한경 등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시베리아의 연해주 지방에서는 이동휘, 안중근 등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불꽃은 1919년 1월 22일 고종 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지면서 온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거세게 타오른 것이다.




유한준

- 現 아동문학가, 시인, 저술가 활동
-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역임
- 前 종교뉴스신문 편집주간
- 前 뷰티투데이 편집국장

- 前 독서신문 이사 편집국장

내외뉴스통신, NB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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