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여성이 있다면 진정 그 순수하고 말간 ‘영혼(靈魂)’이 밸런타인 데이의 ‘상혼(商魂)’을 말갛게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한 잔의 커피도 사랑하고, 휴대폰, 자동차도 사랑하고, 아파트도 사랑하고, 애완견도 사랑하고, 친구, 애인, 배우자, 자녀, 부모도 마치 ‘패키지 상품’처럼 한 꾸러미에 꿰어 공히 ‘사랑’하는 세상입니다. 하긴 조용필도 귀뚜라미를 사랑하고, 라일락도 사랑하고, 밤도 사랑한다고 노래했으니까요. 오늘은 또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을 ‘사랑’하는 비명이 도처에 울려 퍼지겠지요.

어이없게도 네이버 사전에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 물건을 좋아하는 것조차 ‘사랑’이라 정의하고 있으니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재래식 변소에 고봉으로 넘쳐나는 똥 무더기와 그 위의 구더기처럼 사랑의 이름을 들쓴 거래나 조건, 교환적 행태가 역겹도록 꾸역꾸역 넘쳐날 밖에요.

어쨌거나 오늘은 ‘사랑의 날’입니다. ‘사랑’은 대체 무엇일까요. 제가 사랑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흥, 네깟 게?’ 하며 비웃은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삶에 임하는 자세, 인생을 대하는 태도, 생을 운용하는 능력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된다거나, 결혼 적령기는 18세부터 99세라는 말, 어떤 사랑이건 사랑의 감정은 진실하다는 메시지, 사랑을 온몸으로 껴안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에스프리 등이 ‘사랑은 곧 생’이라는 언표(言表)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절망을, 시도는 실패를 배태하는 것처럼 산다는 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고, 사랑은 이별의 싸늘한 뒤태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별의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 죽음과도 같은 실연이 닥쳤을 때 상실의 애도 끝에서 성장과 성숙의 열매를 맺는 것, 이것이 곧 사랑의 변주이자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하는 방식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와 반대로 고통과 슬픔, 아픔을 직면할 각오로 기꺼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누리는’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라거나 ‘실패한 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 거겠지요. 엄격히는 실패한 인생도 없듯이요.

한 사람의 생애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듯이 툭박지건 세련되건 두려움 없이 사랑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능력입니다. 타인과 관계 맺기에 주저하지 않는 능력, 선택에 책임을 지는 능력, 파괴적 감정의 격랑 가운데서도 자기애와 자아 존중감을 잃지 않을 능력, 좌절을 견디는 능력,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경험을 가능케 한 세상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랑이 되었건 아름다운 추억과 향기로 내면에 자리할 것입니다.

이런 결연한 사랑 어느 한 귀퉁이를 비집고 장사로, 거래로, 타협으로 변질되거나 가벼운 호기심과 이기심 등으로 왜곡된 이물 정서가 스며든다는 것은 매우 슬프고 실망스런 일입니다.

지루함이나 권태에서 시작된 심심풀이 땅콩 같은 만남도 본질에 어긋나지만,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의존, 기생, 집착, 구속, 속박, 방치, 냉대, 의심, 아집, 조종, 착취, 이용, 조롱, 학대 등 부정적 정서와 파괴적 패턴이 연인이나 배우자를 옭아매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사랑에 대한 배신이며 모독이자 가혹 행위입니다.

삶처럼 사랑도 치열하게 제대로 해 볼 일입니다. 민낯으로, 맨살로, 속살로, 진피(眞皮)로 부딪혀 볼 일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을 일입니다. 결코 ‘쿨~’할 수 없는 것이 사랑과 삶의 속성입니다. 그러기에 시에서도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처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사랑할 자격은 충분합니다. 다가온 사랑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 사랑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뛰어드십시오. 사랑은 당신 것입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Dance, like nobody is watch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 is listening you.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ive, like today is the last day to live.

- 알프레드 디 수자 Alfred De Souza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www.bistromeme.com)를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 학교, 중앙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공저<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다.

[자유칼럼그룹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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