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황조는 형주자사 유표의 휘하에서 오랫동안 강하태수를 맡아온 무장이다. 군웅의 반열에 들 만한 거물은 아니지만, 삼국지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가 속한 형주가 삼국의 접경지로 전략요충지인데다, 그가 지키는 강하 지역이 형주와 강동을 뱃길로 연결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결성된 제후연합군의 선봉장 손견은 도성의 우물에서 옥새를 입수하자, 큰 뜻을 품고 근거지인 강동으로 돌아온다. 이때 형주자사 유표는 연합군의 맹주 원소로부터 남하하는 손견을 저지하라는 밀서를 받고 이 임무를 황조에게 맡기면서 황조의 이름이 삼국지에 등장하게 된다.
황조가 지휘하는 형주군은 손견의 군사에게 패전하여 한 때 양양성이 포위될 지경에 이르지만, 매복계에 걸려든 손견이 무참히 전사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그러나 손견의 수급을 유표에게 보낸 황조가 뒤늦게 군사를 이끌고 온 손견의 부장 황개와 싸우다가 사로잡히면서 상황은 또다시 뒤집어진다.
손견의 큰아들 손책은 선친의 수급을 돌려주면 생포한 황조를 돌려보내주겠다고 제의를 하고, 이 제안을 유표가 받아들임으로써 황조는 다시 살아서 형주로 돌아오게 된다. 수급을 돌려받은 손책은 온전한 몸으로 선친의 장례를 치룰 수 있게 되었고….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견을 참살하고도 황조가 그에 걸 맞는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왜일까? 손견의 사인(死因)을 황조의 뛰어난 책략의 결과라기보다는 손견의 직정적인 성격과 옥새를 가지면서 생긴 방심 탓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또 황조가 손견의 수하 장수 황개에게 생포된 점 또한 그의 공적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황조가 다시 삼국지에 등장하는 것은 조조가 필생의 라이벌인 원소를 평정하여 강북을 통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침공에 앞서 먼저 세객(說客)을 보낼 때이다.
공융이 추천한 예형이 조조 휘하의 참모와 장수들에게 안하무인의 독설을 마구 퍼부어대자, 한 장수가 칼을 뽑아 예형을 죽이려 했다. 조조는 이를 제지하면서 예형에게 ‘유표를 설득하여 내 휘하에 들어오게 하라.’는 임무를 주어 형주로 보냈다. 쉽게 말해서 형주자사 유표의 항복을 받아오라는 거였다.
유표를 만나서도 예형의 기이한 언행은 계속되었다. 유표는 짜증이 났지만, 조조가 보낸 사자(使者)이니 박대(薄待)할 수가 없었다. 유표는 고심 끝에 강하의 황조에게 예형을 보냈다. 황조로 하여금 조조가 통솔하는 북방군의 최대약점이면서 형주군의 강점인 수군(水軍)의 위용을 보여주게 하여 조조에게 형주침공을 포기하게 하려는 복안도 있었으리라.
황조는 술상을 마련하고 예형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지금, 조조 진영에 인물다운 인물은 누가 있소?”
“음, 어른으로는 공융이 있고, 청년으로는 양수가 있지.”
예형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공융은 공자의 후손으로 학식과 인망을 갖춘 당대 최고의 지성이요, 양수는 태위 양표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천재로 알려진 재사가 아닌가. 황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면 나는 어떻소?’하고 물었다. 예형이 같잖다는 듯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은 말이지, 산신당의 귀신쯤 되겠지.”
‘산신당의 귀신? 그게 무슨 뜻이요?’하고 황조가 다시 물었다.
“아, 그건 말이야. 주민들의 제사를 받아먹고도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뜻이지. 말하자면 주민들의 제물(祭物)을 도적질하는 허깨비 같다고나 할까.”
순간 황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예형의 가슴을 찔렀다. 예형이 아무리 오만불손한 언동으로 큰 결례를 범했다하더라도 조조의 특사를 살해한 것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외교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일은 형주를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결국 조조와 유표는 원수가 되었고,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형주를 공략할 명분이 생기지 않았는가. 황조 정도의 인물이라면 조조가 예형을 유표에게 보낸 의도와, 유표가 예형을 다시 자신에게 보낸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
황조가 마지막으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자.
어느 날 양자강에서 약탈을 일삼던 수적(水賊)이 황조를 찾아와 귀순하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포악하기로 악명이 높은 감녕이었다. 황조는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의 무용(武勇)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여 부장(副將)으로 임명했다.
그 후, 오나라가 수군을 이끌고 강하로 쳐들어왔을 때, 감녕이 손권의 장수 능조를 활로 쏘아 죽이며 승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황조가 칭찬은커녕 그의 수적 전력(前歷)을 들먹이며 오히려 더 홀대를 했다. 화가 난 감녕은 오나라로 귀순해버렸다. 감녕의 용맹과 활솜씨를 잘 알고 있는 오의 장수 여몽은 감녕을 손권에게 천거했고, 손권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의 장수가 된 감녕은 손권의 선봉장이 되어 황조 토벌에 나섰다. 감녕의 맹렬한 공세를 견디지 못한 황조의 군사들은 대부분 죽거나 도망쳐버렸다. 드디어 황조가 머무는 강하성이 포위되었다. 황조는 포위가 허술한 성문 쪽으로 달아났지만,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던 감녕이 쏜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황조의 목은 손권에게 바쳐졌다. 손권은 황조의 수급을 선친의 영전에 제물로 바치는 한편, 크게 잔치를 열어 감녕 등 공을 세운 무장들을 치하했다.
형주의 무장 황조, 손견이라는 대어를 잡았으나 적장에게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고,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예형을 욱하는 성질 때문에 죽여 큰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감녕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홀대하다가 도리어 그에게 죽임을 당해 자신의 수급이 손견의 제사상에 오르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
생각하건대, 황조는 유표, 손견과 그의 두 아들 손책과 손권, 예형, 감녕 등 굵직굵직한 인물들과 싸우거나 유대관계를 맺은 주연급 장수지만 그의 역량은 이에 한참 뒤처지는 조연급에 머무르지 않았나 싶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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