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환술(幻術)은 남의 눈을 속이는 기술인데, 선술(仙術) 점복(占卜) 둔갑술(遁甲術) 등과 함께 방술(方術)의 한 부류로 일컬어지고 있다. 소설 삼국지에는 환술과 둔갑술의 달인 좌자(左慈)가 구사하는 묘기가 여러 곳에 등장한다.


위 왕궁 준공기념으로 오나라에서 밀감 40상자를 조조에게 보냈다. 짐을 가지고 오던 인부들이 어느 산중턱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하얀 등꽃을 관(冠)에 꽂은 절름발이 애꾸눈 노인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수고들 하시는군. 내가 짐을 좀 들어줄까?”


그리고는 노인이 한 인부의 짐을 등에 지고 앞서 가는데 뛰는 듯이 빨랐다. 인부들이 뒤를 따랐는데 이상하게도 등짐이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헤어질 때, 인부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그 노인에게 성함을 물었다.


“좌자라고 하네. 다들 나를 오각(烏角) 선생이라 부르지.”


짐이 도착하자 조조가 밀감 하나를 쪼갰다. 속이 비어 있었다. 몇 개를 쪼개도 마찬가지였다. 조조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한 인부가 ‘혹시….’하며 오던 길에서 만난 좌자라는 노인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데, 마침 좌자가 찾아왔다.


조조는 밀감의 속이 비어있다며 좌자를 힐문했다. 좌자가 웃으면서, ‘그럴 리가 있나요?’하며 밀감 하나를 쪼갰다. 속이 꽉 차 있었다. 다른 사람이 쪼개 봐도 마찬가지였다.


좌자가 삶은 양 한 마리와 술 닷 말을 요구했다.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 나오자 순식간에 모두 먹어치웠다. 놀란 조조가 방술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좌자가 대답했다.


“아미산에 들어가 도를 배운 지 30년, 풍운의 조화를 터득하고 자유자재로 둔갑을 하게 되었소. 위왕께서도 내 제자가 되어 도를 배워보지 않겠소?”


“그럴 수는 없지.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고, 또 나를 대신해서 이곳을 다스릴 사람도 없다.”


조조가 진지하게 대답하자 좌자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비에게 맡기면 천하가 평안해질 것입니다.”


“이놈. 너는 유비의 첩자였구나!”


유비라는 말에 갑자기 노기등등해진 조조, 좌자를 형틀에 묶고 고문을 하게 했다.


“이놈들아, 간지럽게 하지 마라!”


혹독한 고문을 할 때마다 좌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에 칼을 씌우고 발목을 쇠고리로 채워도 좌자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조조는 다시 ‘먹을 것을 주지마라.’고 명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 끄떡없고 오히려 혈색이 더 좋아졌다. 조조는 결국 좌자를 방면했다.


위 왕궁 낙성을 축하하는 대연(大宴)의 날이 밝았다. 진상품을 든 하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좌자도 거지행색을 하고 나타났다. 조조는 내심 불쾌했으나 잔칫날 쫓아낼 수도 없고 해서 ‘어이, 불청객! 너는 오늘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하고 말했다.


“꽃을 바치려고 하오.”


“이 겨울에 꽃이 있겠느냐? 좋다, 네 재주가 용하다고 하니 이 화병에 모란꽃을 피워보아라.”


좌자가 화병을 향해 호~ 하고 입김을 뿜었다. 모란꽃 한 송이가 함초롬히 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문무백관들이 눈을 비비며 감탄했다. 그때 좌자가 음식상을 둘러보며 ‘어찌 송강(松江)의 농어가 없소?’하고 말했다.


송강의 농어는 아가미가 네 개로, 촉에서 나는 생강과 함께 먹는 것이 별미다. 조조가 ‘농어란 살아있어야 제 맛인데, 어찌 수천 리 떨어져 있는 송강에서 산 농어를 가져온단 말인가?’하며 힐문했다.


좌자는 껄껄 웃으며 낚싯대를 가져오게 하더니 뜰 안의 연못에 드리웠다. 잠시 동안에 수십 마리의 농어가 잡혔다. 모두 아가미가 넷인 송강의 농어였다. 그는 화분을 가져오게 하여 촉의 생강도 만들어(?)냈다.

좌자는 옥배(玉杯)에 술을 부어 조조에게 권했다. 의심 많은 조조가 마시지 않자 그는 자신의 머리에서 동곳을 뽑아 잔 가운데를 쭉 그었다. 잔은 술이 담긴 채 두 쪽으로 갈라졌다. 반쪽 잔을 마신 그가 남은 반쪽을 조조에게 내밀었다.

조조가 받지 앉자, 그 잔을 공중으로 던졌다. 잔은 곧 비둘기로 변했다. 하객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 사이, 좌자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정신을 차린 조조가 급히 무장 허저를 불러 명했다.

“저런 요사스런 인간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 그놈을 잡아라!”

허저는 군사를 이끌고 그를 찾아 나섰다. 어느 산모퉁이에 이르자 좌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좌자는 곧 양으로 둔갑, 양떼들 속으로 숨어버렸다. 군사들은 양들을 모두 죽이고 돌아갔다. 다시 사람으로 변신한 좌자는 양들을 모두 살려냈다.

이 이야기가 양치기 소년의 입을 통하여 온 고을에 퍼졌다. 소문을 들은 조조는 죽은 줄 알았던 좌자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는 좌자의 몽타주를 그리게 하여 온 고을에 나눠주며 잡아들이게 했다.

사흘도 안 되어 수백 명의 용의자가 잡혀왔다. 모두 애꾸눈에다 절름발이요, 머리엔 등꽃을 꽂고 있었다. 조조는 그들의 목을 모두 베게 했다. 그러자 시체더미로부터 연기가 오르더니 하얀 학을 탄 좌자의 모습이 나타나 ‘간웅이 하루아침에 죽으리라.’하고 말하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때 광풍이 몰아치며 흙먼지를 일으켰고 목 없는 좌자의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 조조에게로 몰려들었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기겁을 하며 도망쳤고, 조조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몸져누운 조조는 얼마 안 있어 죽고 만다.

좌자는 정사에도 나오는 실존인물이다. 그가 구사한 환술과 둔갑술 중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송강의 농어를 잡은 것과 촉의 생강을 구해온 것, 그리고 양으로 변하여 양떼 사이에 숨은 사실 등은 후한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생각하건대, 삼국지에 등장하는 좌자의 기상천외한 환술들은 대부분 조조의 간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저자가 꾸며낸 얘기가 아닌가 싶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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