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닭이나 새들도 때를 알고 천변(天變)을 아는데, 사람이 천문을 모른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여덟, 아홉 살 때부터 땅바닥에 천문도(天文圖)를 펼쳐놓고 별자리를 그리면서 놀고, 밤에는 잠도 자지 않고 별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아들을 보고, 도대체 너는 커서 무엇이 될 거냐고 물었을 때 어린 관로가 대답한 말이다.
관로(管輅). 어릴 때는 천체광이었고, 열다섯 살에 이미 주역(周易)에 통달했으며, 별점과 풍각(風角)점 수리(數理)와 관상에 조예가 깊어 당대 최고의 복성(卜聖)으로 명성을 떨쳤던 사람이다. 환자의 병인(病因)을 찾아주고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는 등 관로가 남긴 일화는 소설 삼국지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몇 가지 소개해 본다.
어떤 고을의 현령이 아내의 두통과 아들의 가슴앓이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오다가 관로를 초빙하여 점을 쳐보았다.
“무덤 위에 집을 지었구려. 이 집 서쪽 벽 아래에 두 사람의 시체가 묻혀 있소. 한 사람은 창을 들고 있고, 한 사람은 활과 화살을 들고 있소. 창을 든 사람이 머리를 찔러대니 부인의 머리가 아프고, 활을 든 사람이 화살로 가슴을 찔러대니 자제분의 가슴이 아픈 것이오.”
일꾼을 시켜서 서쪽 벽 밑을 파보았더니 과연 땅 속에서 관(棺)이 두 개 나왔다. 한곳에는 창이, 다른 한곳에는 활과 화살이 들어있었다. 관 속의 뼈를 뒷산 양지쪽에 묻어주자, 그의 아내와 아들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소를 도둑맞았다. 소의 주인이 찾아와 점을 쳐달라고 했다.
“저쪽 골짜기에서 서편으로 쭉 올라가 보시오. 일곱 사람이 소를 잡고 있을 것이오. 속히 가보시오. 고기와 가죽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오.”
말한 그대로였다. 그의 능력은 지나간 일을 알아맞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豫知) 능력도 있었다. 어느 날, 관로가 길을 가다가 무심코 한 청년의 얼굴을 보았는데, ‘아, 아깝구나, 사흘 후에 죽을 운명이로다.’하고 중얼거렸다.
조안이라는 이름의, 인근에 사는 열아홉 살 청년이었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집으로 뛰어가 아비에게 들은 대로 얘기했다. 관로의 명성을 잘 아는 그 아비는 조안과 함께 관로의 집으로 찾아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오.’하고 말했지만 아비와 청년의 비통한 눈물을 본 관로는 책임을 느꼈는지, 한 가지 방책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두 사람은 관로가 일러준 대로 술을 가지고 어떤 산에 올라갔다. 마침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두 노인을 만났다. 머리는 모두 백발이었고 각각 홍의와 백의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다가가서 한창 흥이 고조되었을 때 가져온 술을 권했다. 두 노인은 완전히 바둑에 심취되어 술을 받아 마셨다. 이윽고 바둑이 끝나자, 아비가 비로소 소원을 읍소했다.
두 노인은 깜짝 놀라며 ‘이건 틀림없이 관로의 짓이다. 사사로이 인간의 공물을 얻어먹었으니 곤란한 일이로다.’하면서 각자 호주머니에서 장부를 꺼내더니 서로 건너다보았다.
한 노인이 ‘이 청년은 열아홉으로 인생을 끝내게 되어있군.’하며 ‘十九’자의 앞 글자를 ‘九’자로 고쳐주자고 했다. 다른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친 뒤, 두 노인은 학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그 후, 그 아비와 청년은 관로를 찾아가 깊이 감사드리고 도대체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선인(仙人)들이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남두(南斗), 흰 옷을 입은 사람은 북두(北斗)지.’하고 말했다. 어쨌든 열아홉 살에 죽을 뻔했던 청년은 아흔아홉 살까지 살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관로는 자신의 불찰로 천기(天機)가 누설됐다며 스스로 근신하여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이 무렵, 위왕 조조가 관로를 찾았다. 관로는 내키지 않았으나 조조의 명이라 어쩔 수 없이 부름에 응했다. 조조는 첫눈에 그가 흔히 세상에 있는 부류의 점쟁이가 아님을 알아보고, 그를 태사관으로 위촉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조조가 자신과 주위 인물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관로는 대강만 얘기하고 되도록 말을 아꼈다. 조조가 마지막으로 오와 촉의 동태를 물었다. 이번에는 관로가 몇 마디 대답을 했다.
“오나라에서는 어저께 유력한 중신이 한 사람 죽었고, 촉나라는 곧 국경을 넘어 쳐들어올 것입니다.”
얼마 안 있어 관로의 예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오의 대도독 노숙이 죽었다는 전갈이 있었고, 이어서 촉군이 한중으로 쳐들어왔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조조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출정하려고 했으나, 관로는 ‘내년 초에 도성에 큰 불이 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멀리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하고 말했다.
조조는 그의 말을 신뢰하고 조홍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한중으로 가게하고, 하후돈에게도 3만의 군사를 주며 허도 주위에 주둔케 했다. 다음해 정월 대보름, 허도에 큰 불이 났다. 한의 구신(舊臣)인 경기 위황 김위 등이 도성에 불을 지르고 조조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조조는 오히려 그 기회를 틈타 반기를 든 구신들을 뿌리 뽑아 스스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한다. 세 사람의 주모자뿐 아니라 자신의 반대세력까지 모조리 일망타진한 것이다.
자신의 예언 때문에 한조의 충신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관로는 더욱 죄책감에 빠져 두문불출, 아예 대문을 닫아걸었다.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관로가 47세 되던 해, 조정의 실권자인 대장군 사마소가 벼슬을 주겠다며 초빙을 했으나 거절했다는 기록이 전할 뿐이다. 그는 이듬해 세상을 떴다.
관로의 행적에 관한 기록들 중에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가 알아맞혔거나 예언한 것은 인간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은가.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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