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7-09-13 19:58:29
기사수정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지난 2014년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신북동의 한 빌라 2층에서 남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악을 쓰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깊어가는 밤이어서인지 그 소리는 인근 주민들의 귓전을 울렸다.

 

아이가 계속 울자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오후 9시 40분쯤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했다.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경찰은 소방관들의 협조를 받아 사다리를 이용해 베란다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진입했다. 

 

▲범인 이 씨(왼쪽)와 사체 발견 당시 고무통 내부 상황을 그린 그래픽 (오른쪽) (사진출처=YTN 뉴스화면 캡쳐)


방안에서 발견된 2구의 사체

 

집 안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잡했고 악취가 심했다. 2개의 방 중 큰방에서는 8살짜리 아이가 눈빛을 잃은 채 멍하니 누워 있었다. 작은방을 살펴보던 경찰은 이불이 덮여 있는 지름 84cm, 높이 80cm의 빨간 고무통을 발견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이불을 들춰보니 고무통은 소금포대로 고정돼 있었다. 다시 뚜껑을 열었더니 시멘트 덩어리에 눌려있는 장판이 있었다. 그 안에는 어떤 물체가 있었는데, 풀어보니 시신이었다. 한 구도 아니고 두 구나 같은 방식으로 포개져 있었다.

 

아래에 있는 시신은 백골 상태였고, 그 위에 있는 시신의 목에는 2m 정도 되는 스카프가 세 번 감겨져 있었다. 얼굴에는 공사판에서 쓰는 랩이 약 165cm 정도로 둘둘 씌워져 있어 한 눈에 봐도 타살이 의심됐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빌라 주인 이 아무개 씨(51·여)를 특정하고 신병 확보에 나섰다. 그녀는 집 근처 제과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후 잠적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 씨와 자주 통화한 스리랑카인을 통해 그녀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시신 발견 4일 후인 8월 1일 경찰은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의 한 섬유공장 외국인 숙소 내에서 이 씨를 검거했다.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 씨는 1차 조사에서 고무통 시신에 대해 “남편과 외국인 한 명을 내가 죽였다”고 진술했다. 또 “길 가던 외국인을 집에 데려와 술을 마시다 돈을 달라고 해 다투다 거실에서 살해했고, 회사에서 100만 원을 가불해 길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에게 주고 시신을 고무통에 넣도록 했다”며 비교적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술을 번복했고, 수사도 꼬이기 시작했다. 당초 자신이 살해했다고 말했던 백골 상태인 남편 박 아무개 씨는 “10년 전 자연사했고, 베란다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이 씨의 큰아들(28)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실종됐다”고 했으나 나중에 자연사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큰아들을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했으나 ‘진실 반응’이 나왔다. 이로써 남편 박 씨가 타살된 것인지 아니면 자연사한 것인지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게 어렵게 됐다.

 

이 씨의 복잡한 남자 관계

 

여러 정황을 보면 이 씨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집안의 가장이 사망했는데도 외부에 알리거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시신을 고무통에 넣어 집 안에 뒀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심지어 남편 박 씨의 가족에게조차 사망 사실을 숨겼다. 이 씨와 남편은 지난 1995년 당시 만 여섯 살이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서로 책임을 묻는 등 부부 사이가 틀어졌다고 알려졌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당초 이 씨가 외국인이라고 했던 시신 한 구는 한국인 내연남 A씨(49)로 밝혀졌다. 그는 2013년 10월 이 씨와의 내연 관계가 들통 나 직장에서 해고됐으며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감정을 의뢰한 결과 시신 2구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남편의 시신에서는 고혈압 치료제인 ‘아테놀롤’과 수면제 성분인 ‘독실아민’ 성분이 검출됐다. 내연남 시신에서는 졸피뎀이 검출됐는데, 처방전 없이는 구할 수 없는 수면제다. 수면 성분이 강력해 범죄에 종종 악용된다. 시신 2구 모두에서 수면제 성분이 발견됨으로써 이 씨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내연남 A씨를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말에도 모순이 생긴다. 이 씨가 굳이 한국인을 외국인으로 말한 이유도 미심쩍었다.

 

일각에서는 이 씨가 외국인을 살해한 후 제3의 장소에 유기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더욱이 이 씨가 “자연사했다”고 주장한 남편에게서도 수면제 성분이 검출돼 타살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이 씨는 키가 150cm에 불과하다. 체격은 크지만 성인 남성을 한 번에 제압하기에는 무리다. 시신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나온 것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범이나 조력자가 있을 수 있다. 경찰도 이 부분을 집중 수사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범인 이 씨 주변에는 여러 남자가 등장한다. 숨진 남편 박 씨를 포함해 최소 4명이 거론됐다. 박 씨와 함께 고무통에 들어 있던 내연남 A씨와 이 씨가 검거되기 전까지 함께 있던 스리랑카인. 또 시신 발견 당시 안방에 있던 막내아들의 친아버지인 방글라데시인이다. 그는 자국으로 출국한 상태였다.

 

이 씨는 1차 진술에서 고무통에 있는 시신 한 구는 자신이 살해한 외국인 남성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내국인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 씨가 살해한 또 다른 외국인 남자가 있다면 총 5명이 등장하는 셈이다. 이 씨의 이웃들은 그가 “여러 남자와 함께 자주 어울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들 남성과 단순한 친분 관계가 아닌 내연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여러 정황을 감안해 이 씨가 외국인 남성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조사하지 않았다. 당시 포천경찰서 수사과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주변에 남자가 많은 것은 개인적인 취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씨가 부양할 가족이 많지 않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성매매’보다는 ‘복잡한 남자관계’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다.

 

포천은 안산과 부천에 이어 전국에서 세번째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이다. 전체 인구의 약 6%에 달한다. 특히 이 씨가 숨어 있다가 검거된 소흘읍 송우리와 가산·내촌면 등에 산재한 가구·염색·섬유 등 업체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씨와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만남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이 씨 남편의 사망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따져봐야 했다. 보통 10년 된 시신은 완전히 백골 상태가 된다. 그런데도 남편 박 씨의 손가락에서는 지문이 나왔다. 이 씨 집에서는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가 나왔는데, 사건 발생 한 달 전까지 통화한 내역이 확인됐다. 이 씨는 자기 휴대전화가 있는데도, 왜 남편 것을 사용했던 걸까.

 

▲아이가 혼자 울다 발견된 큰방(왼쪽)과 실내 구조(오른쪽) (사진출처=방송 뉴스화면 캡쳐)

 

시신에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 나와

 

검찰은 이 씨를 살인과 사체은닉,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씨는 남편이 자연사했다고 주장했으나 잠자던 중 급사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그 이유로 남편 박 씨는 평소 축구 등 운동을 즐겨하는 등 매우 건강했으며 사망 무렵 안과 진료를 받은 것 외에는 고혈압 치료제나 수면제를 처방받지도 않았다. 다른 질병으로 치료받은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4년 기준 40~44세 남성이 수면 중 급사할 확률은 인구 10만 명 당 1.2명에 불과하다는 통계청 통계자료도 첨부했다.

 

검찰은 남편 박 씨가 살해된 시점을 2004년 가을쯤으로 봤다. 이 씨의 큰 아들이 “2004년 봄이나 가을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들었다”고 진술했고, 박 씨의 요양급여 내역이 2004년 9월9일에 확인된 것에 근거했다. 살해동기에 대해서는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불면증과 조울증을 앓고 있던 이 씨가 자식을 잃은 슬픔과 남편의 외도에 대한 원망에 휩싸인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검찰청 종합심리분석 결과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았다는 이 씨의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연남을 우발적으로 살해했고, 수면제를 먹인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내연남 A씨가 사망 무렵 수면제를 구입한 적은 없었다. 반면 이 씨는 3일 연속 수면제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근거로 추궁하자 “술을 마시는데 시끄럽게 해서 잠을 재우기 위해 비염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였다”고 자백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씨는 2013년 5월 초순쯤 내연남 A씨의 가족들을 만나고 결혼할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씨는 A씨와 헤어졌고, 그가 “그동안 함께 사용한 돈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면서 금전적인 갈등을 빚었다. A씨가 술을 마시던 중 이 씨의 뺨을 때리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목을 조르고 스카프로 목을 감아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후 이 씨는 A씨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갔으니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A씨의 가족들은 이 씨의 말을 믿고는 따로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씨 집이 쓰레기장처럼 방치된 정황도 드러났다. 내연남 A씨가 살해되기 약 한 달 전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이 씨의 집은 변사체 발견 당시와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러니까 이씨는 A씨를 살해해 남편 시신과 함께 고무통에 유기한 후에는 집안에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시신에서 나는 악취를 쓰레기에서 나는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검찰은 이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2015년 2월 11일 1심 재판부는 이 씨에게 징역 24년형을 선고하며 “살해 방법과 집안에 사체를 장기간 은닉하고 아이를 방치한 일 등에 비춰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남편 박 씨의 살해혐의에 대해서는 “외상도 없었고 유서 등 자살 징후도 없었다. 남편의 사인이 불분명하지만 자연사, 자살, 제삼자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만큼 이 씨가 죽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남편의 사인이 불분명하고, 남편 사망에 이 씨가 개입했다고 볼 충분한 증거도 없다”며 무죄로 본 것이다. 형량도 징역 18년으로 감형했다. 검사와 이 씨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모두 기각하고 2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포천 고무통 빌라 살인사건’에 대한 법적 처벌도 끝이 났다.

 

pressfree7@hanmail.net

 

5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nbnnews.co.kr/news/view.php?idx=11065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관련기사
채널고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