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한 양식인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중 가요인 ‘엔카’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뽕짝’이라는 다소 비하적인 명칭으로 불리는데 가사에서 풍기는 정서적 내용은 신파조로써 특히 식민지배와 전쟁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영한 ‘가거라 삼팔선’, ‘단장의 미아리고개’, ‘꿈에 본 내 고향’ 등이 있고, ‘동백 아가씨’ 등의 적지 않은 곡이 일본색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한 국민의 대표 애창 트로트 중의 하나인 ‘목포의 눈물’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이난영이 처음 부른 뒤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는 트로트 곡입니다. 작사자는 문일석으로 와세다대학 출신의 20대 무명 시인이었던 그는 1935년 조선일보가 공모한 노랫말에 당선되어 작곡가 손목인의 곡을 입혀 취입을 하였으며, 가수는 목포 출신의 신인으로 당시 나이 십대 후반이었던 이난영이었습니다. 가사를 보면 목포항을 배경으로 이별의 끝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그리고 있으나 이 노래의 가사는 단순한 남녀 간의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일본군에 징용으로 끌려가는 남편과의 이별을 신혼인 아녀자가 아쉬워하는 내용입니다. 1절 중 “…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에서 ‘부두의 새악시’가 바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생이별을 당해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2절에 나오는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라는 가사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커다란 산봉우리에 볏짚을 쌓아서 많은 식량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장하여 일본군을 속인 적이 있습니다. 일본군은 커다란 노적가리를 보고 조선의 군대가 아주 많이 숨어있다고 판단해 물러났던 것입니다. 그 후로 이 산봉우리는 ‘노적봉’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이 노래가 어떻게 해서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통과했을까요? 사실은 이 가사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했을 때 1차 심사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사자 문일석은 “삼백년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로 가사를 고쳐서 제출했습니다. 그리고는 원안풍이 무엇인지 묻는 일본인들에게 “바람의 이름이다”라고 대답하여 조선말을 잘 모르는 일본인 관리들을 속인 것입니다. ‘삼백년 원안풍’은 1945년 해방 후에 ‘삼백년 원한 품은’으로 바뀌게 됩니다. ‘삼백년 원한’이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지 300년 지나서 또 다시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조선백성의 원한을 의미합니다. 3절의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는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상처받은 고통을 상기하는 것이고,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는 일본 징용으로 끌려가 다시 귀환할 기약이 없음에 절망하는 새색시의 절규입니다.

트로트 중에는 6·25사변으로 인한 원한과 슬픔을 노래한 것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는 6·25사변 때 함경남도 흥남 철수 작전을 통해 부산으로 넘어온 피난민들의 애환을 그린 대중가요입니다. 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에, 순수음악을 전공했다가 대중 가수가 된 현인이 불렀습니다. 1절은 흥남 부두에서 피난을 오면서 금순이와 이별하게 된 과정을, 2절은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지내는 주인공이 영도다리에서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3절은 헤어진 가족·연인과의 상봉을 염원하는 내용입니다. 영도다리는 6·25사변 때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될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한 랜드마크가 되었고, 이렇듯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트로트는 대부분 노래방 등에서 흥겹게 불리지만 가사를 생각해 보아야할 노래들이 많습니다. 한자로 휘갈겨 읽지 못하는 서예 작품은 흰 종이와 먹물이 합쳐진 그림일 뿐이고, 가사 내용도 모르는 채 흥얼거리는 팝송은 박자와 음정과 소리에 불과하듯이 노래를 부를 때에도 가사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그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목포의 눈물’이나 ‘굳세어라 금순아’와 같은 내용의 가사로 된 노래가 다시는 유행하지 않게 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일 것입니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한 줄이 심장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선의 총성이 멈추었다. 그때부터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피난민들은 남쪽으로 온다. 늘 남쪽으로 온다.”


내외뉴스통신/내외경제TV 상임고문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 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937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