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91호 정교한 작품

신라 때 만든 토우(土偶)
'도제 기마인물상(陶製騎馬人物像)'은 말을 타고 있는 배달민족의 기상으로 국보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삼국시대 신라에서 흙으로 빚어 만든 토우(土偶)인데, 경북 경주시 노농동 금령총에서 금관과 함께 2점이 출토된 것이다. 제작연대는 5~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토우 2점 가운데 첫 번째 토우는 높이 23.4cm, 길이 29.4cm. 직사각형의 두꺼운 판대 위에 마구류를 완전하게 갖춘 말과 말 위에 탄 인물상으로 되어 있다. 말을 탄 사람은 삼각형 관모를 쓰고 정장차림이다.

특히 삼국시대의 공예 조각 작품으로 매우 정교하고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 이 토우는 말의 얼굴과 엉덩이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말 엉덩이 위에 술잔 모양의 그릇을 얹어 놓았는데 속으로 통하고, 앞가슴에는 액체를 따를 수 있도록 병 주둥이가 앞으로 뻗어 있다.

말 꼬리는 손잡이구실을 하도록 의장이 되었는데 비록 실용성이 없다고 해도 토우 전체가 하나의 용기와 같은 구실을 하도록 만들었다는데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네 다리와 말굽의 표현이 투박하고 서투르다는 것이 흠이다.

두 번째 토우는 높이 21.3cm, 길이 26.8cm로 첫 번째 토우보다 조금 작은 규모이다. 말 모양이나 그릇으로서의 양식은 첫 번째 토우와 거의 같다. 다른 점은 말을 탄 인물이 관모가 아니라 꼭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방울 같은 것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 첫 번째 토우와 다르다. 또한 등에는 노자 돈을 넣은 돈주머니 전대를 메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두 번째 토우는 주인공인 첫 번째 토우 앞에 서서를 주인을 안내하는 길잡이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경복궁 전철역에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기마민족의 후예
'도제 기마인물상'은 배달민족이 ‘기마민족’이라는 것을 내외에 분명하게 밝혀준 자료이다.

기마민족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부족국가를 정복하여 영토를 넓히고 농경지를 확보하던 부족시대 초기의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유목민 중심 기마민족과 동방의 비유목민의 기마민족으로 구별되는데, 배달민족은 동방계의 비유목민 기마민족으로 분류된다. 부여, 고구려, 여진, 만주족이 그 대표이다. 대륙계의 기마민족은 몽골, 거란, 스키타이, 사르마트 등이 해당한다.

한반도에는 먼 옛날부터 중국처럼 말이 있었다. 그러나 섬나라 일본에는 그때 말이 없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섬나라 일본은 기마민족에서 제외된다.

1949년 일본의 도쿄대학 에가미 나미오 교수가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기마민족 정복설’을 주장하여 종래의 국수적인 일본 국가관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가 주장한 ‘기마민족 정복설’의 골자는 “일본의 고대 왕조는 부여, 고구려와 관계가 있는 동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동만주와 한반도를 거쳐 기타규수인 북구주와 기나이로 침입해 토착민의 야마토 정권을 무너뜨리고 세웠다”는 것이었다.

말을 탄 기마민족의 무장 세력이 4세기경에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의 오사카 근방에 나라(奈良 ; 한국어로 국가라는 뜻)를 세운 것이 일본의 건국이라는 말이다.

이 학설로 엄청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1972년 3월 아스카 고구려 벽화가 발굴되면서 그의 학설은 점점 확충되어 가고 있다.

순장 대용으로 토우 사용
우리들의 조상인 배달민족은 먼 옛날 임금이나 지체 높은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낼 때 그 수하의 사람들과 물품을 함께 무덤에 묻는 순장(殉葬)을 하였다.

본래 순장은 왕후, 귀족, 귀인 등이 죽으면 그 유해와 함께 그를 모시던 살아있는 종들을 함께 매장하는 일이었다. 순장에는 살아있는 종들과 무장 군인, 수레와 말, 개와 장신구도 함께 묻었다.

아시아에서는 주로 중국 은나라 때부터 성행하였다. 죽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섬기던 부하들도 따라가서 영혼을 섬겨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인지가 발달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깨달은 이후부터 순장 대신에 진흙이나 사기로 토우를 만들거나 돌로 석인상(石人像)을 만들어 묻었다. 순장 대용으로 사용한 토우나 석인상의 형태는 다양해서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 노래하는 인물, 지게를 진 인물, 말을 탄 토우, 돌로 만든 석인상 등이었다.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고 석인상은 돌로 만든 인형이었는데,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부려먹을 심부름꾼인 셈이다.

'도제 기마인물상(陶製騎馬人物像)'은 순장의 대용품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유한준

-現 아동문학가, 시인, 저술가로 활동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前 종교뉴스신문 편집주간
-前 독서신문 이사 편집국장
-한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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