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화가·시인·서예가’ 합작 ‘24m 대작 수묵산수화’
최근 민경갑 화백 타계…‘세 거장 합작한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남아
영남대 전시 48년 만에 최근 복원·복제…노희찬 삼일방직 회장 비용 전액 후원

[대구=내외뉴스통신] 김도형 기자 = 한국화의 대가 유산(酉山) 민경갑(1933~2018) 화백의 대작 <낙동강천리도>(1970년)가 새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낙동강천리도>는 길이 2360cm, 폭 105cm 크기의 대형 수묵산수화로 영남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다. 낙동강 발원지에서부터 남해 하구에 이르기까지 1천 300리 길 낙동강과 주변 전경을 총 9폭에 담았다.

1970년부터 이 작품을 소장해 오던 영남대가 최근 복원·복제를 마쳤다. 장장 6개월이 걸렸다. 복원된 원작품은 원래 있던 영남대 중앙도서관에 전시하고, 복제도는 영남대 천마아트센터(경북 경산)와 영남대 의료원 호흡기센터(대구 대명동)에 걸었다.

특히,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화가, 시인, 서예가가 합작한 수작이다. 민경갑 화백의 그림에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 시인이 지은 ‘낙동강’ 시를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 서예가의 글씨로 마무리했다. 이은상 시인은 가고파, 동무생각, 봄처녀 등을 쓴 대한민국 대표 시조시인이다. 김충현 서예가는 4.19혁명 기념탑, 독립선언서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한글 서예 보급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민경갑 화백이 타계하면서 <낙동강천리도>는 이들 세 거장이 합작해 남긴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남게 됐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수묵산수화에서 전지 이상의 대작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조선후기 김홍도와 함께 화원에서 이름을 떨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8.6미터로 전례 없는 대작으로 평가되고,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에 비견할 만한 대작 수묵산수화가 없었다.”면서 “<낙동강천리도>는 한국 수묵산수화의 역사를 새로 써야 될 대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크기에서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관념의 세계가 아닌 실경이라는 점에서도 놀랍다. 1천리를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가며 그 주변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아 기존의 산수화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파격적인 구도 또한 놀랍다”고 평했다.

<낙동강천리도>는 1970년 당시 세계적 캠퍼스 건설을 추진 중이던 영남대의 원대한 비전과 염원을 담았다. 1970년 4월 영남대 대명동캠퍼스 도서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며 처음 공개됐다. 1976년 8월 영남대의 상징인 경산캠퍼스 중앙도서관 제3열람실 서편으로 옮겼으며, 2005년 2월 중앙도서관 리노베이션 공사를 완공하면서 제2열람실 북편 현재 위치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이 같은 대작의 존재가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영남대 내부 구성원조차도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2017년 11월, <낙동강천리도>의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알아 본 서길수 영남대 총장이 복원·보존 작업을 추진하게 됐다.

서길수 총장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합작한 이 작품이 우리 대학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작품은 복원·보존 처리하고, 복제도를 별도로 제작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에 전시해 교내 구성원과 외부 방문객들이 감상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24미터에 달하는 대작인 탓에 복원 작업은 물론 복제도의 전시공간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대학 발전에 관심이 많았던 영남대 화학공학부 63학번 동문 출신인 삼일방직(주) 노희찬 회장이 선뜻 나섰다. 노 회장이 복원·복제 비용 1억 원 전액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면서 복원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영남대 미술보존복원연계전공(미술학부 주관) 학생들도 복원 작업에 힘을 보탰다.

2018년 3월 <낙동강천리도> 복원·복제 사업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제일 먼저 원작자인 민경갑 화백을 찾았다. 작품 복원 전 작품 제작에 담긴 사연을 듣기 위해서다. 지난해 3월 고인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에서 민 화백은 “이 그림의 아이디어는 제2대 영남대 총장을 지낸 이선근 전 문교부장관이 냈다. 당시 헬리콥터를 타고 낙동강을 둘러 봤다. 홍익대 교수를 역임한 성낙인 사진작가와 함께 보름간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며 다녔다. 워낙 대작인 탓에 작업기간이 6개월이나 걸렸다. 끝나고 나서 일주일동안 잠만 잤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인이 된 민 화백을 대신해 장남 민지홍 씨가 10일 열린 복원 기념 제막식에 참석했다. 민 씨는 “지난 12월 아버님께서 작고하시기 전, 제막식 초청장을 받으셨다. 건강이 많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제막식에 참석하겠다고 하실 만큼 <낙동강천리도>에 대한 애정을 보이셨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준 영남대학교에 아버님을 대신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근 복원·복제 작업을 마친 영남대는 10일 오후 3시 중앙도서관 로비에서 <낙동강천리도> 복원기념 제막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복원 사업을 후원한 노희찬 회장을 비롯해 학교법인 영남학원 한재숙 이사장, 김진삼 이사, 영남대 서길수 총장, 이효수 전 총장, 정태일 영남대 총동창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박영석 대구문화재단 대표, 고 민경갑 화백의 장남 민지홍 씨, 미술평론가 신항섭, 박종무 복원·복제 사업 추진위원장, 정인성 박물관장, 그리고 복원 작업에 참가한 영남대 미술학부 임남수 교수와 교양학부 정두희 교수(미술보존복원전공)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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