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난 해에 따라 ‘띠’를 갖게 된다. 띠는 열 두 동물로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띠는 ‘생초(生肖)’라 한다. 자신이 태어난 해가 어느 동물과 비슷한가라는 의미다. 천문 변화를 이해하는 12진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있었다. 서양은 별자리 12개, 동양은 12지가 존재했다. 북방 유목민족이나 인디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계절을 나누어 구분했다. 한나라 무렵 천간과 지지를 배합해 육십갑자가 성립됐다. 하늘의 이치를 담은 천간(天干)과 땅의 이치를 담은 지지(地支)를 조합해 독특한 연월일시 표기법으로 발전했다. 만물이 음양의 활동과 더불어 태어나 자라고, 무성해진 다음에 쇠약해져 그 생명을 마치고, 다음을 준비하는 일 년 동안 시간 흐름을 설명한 것.

후한 때 왕충은 ‘논형’이란 책에서 동물과 결합해 상징화했다. 왕충은 12지를 널리 보급시키고, 변방 민족과 교역에서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동물로 바꾸었다고 설명한다. 하루를 12간격으로 나누어 각 시간대마다 동물의 특성에 맞게 배치했다. 자(子)는 쥐, 축(丑)은 소, 인(寅)은 호랑이, 묘(卯)는 토끼, 진(辰)은 용, 사(巳)는 뱀, 오(午)는 말, 미(未)는 양, 신(申)은 원숭이, 유(酉)는 닭, 술(戌)은 개, 해(亥)는 돼지를 의미한다. 당나라를 거쳐 통일신라 때 한반도에 들어왔다.

10간(干)과 12지(支)를 하나씩 조합해 만드는 간지는 60년 주기로 한 번씩 돌아온다. ‘환갑(還甲)’은 처음인 ‘갑자(甲子)’로 돌아온다는 의미. 천간을 오행의 색상으로 표현하면 갑과 을은 파랑, 병과 정은 빨강, 무와 기는 노랑, 경과 신은 백색, 임과 계는 검은색을 나타낸다. 이를 조합하면 2020년 경자년은 ‘흰 쥐’, 2021년 신축년은 불교 심우도에서 나오는 것처럼 ‘흰 소’를 타는 해가 된다. 띠는 본래 동양의 개념. 양력이 아닌 음력 설 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듯싶다.

■ 12지 동물, 세상에 그런 뜻이

12지는 방위를 나타내는 신으로도 묘사된다. 얼굴은 동물, 몸은 사람 형상이다.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열두 방위를 맡는다. 궁궐이나 왕릉의 해당 방위에 수호신을 세워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쥐·子)의 위치는 북쪽, ‘오’(말·午)는 남쪽을 가르킨다. 밤 12시 자정(子正)과 낮 12시 정오(正午)는 이 같은 이유로 만들어졌다. 지도에서 남북을 이은 선을 자오선(子午線)이라 부르는 것이 이 때문.

우리 12지신 상은 중국 보다 크고, 무덤 안이 아니라 밖에 배치한다. 신라 김유신묘, 괘릉, 진덕여왕릉 등이 대표적. 부처를 지키는 신장(神將) 역할도 맡는다. 성룡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 역시 이를 소재로 만들었다. 과거 TV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서는 12지신 레이스를 하기도 했다.

12지 동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한다. 그 가운데 제각기 동물이 가장 활동이 왕성한 시간을 고려해 12지 동물을 정했다는 게 가장 과학적이다. 첫 번째 자시(23~01시>는 음기가 한계점에 이르고 양기가 시작되는 시간. 야행성인 쥐가 하루 중 활발하게 돌아다닐 때다. 소는 한밤중에 더욱 열심히 되새김질을 하는 특성이 있어 축시(1시~3시)에 ​배정됐다.

인시(03~05시)는 호랑이가 가장 사납고 흉포할 때. 묘시(05~07)는 해뜨기 직전 달이 중천에 떠있어서 달 속에 산다고 믿었던 토끼가 배정됐다. 진시(07~09시)는 용이 날면서 비 뿌리기 스킬을 시전 하는 때. 용은 구름과 바람을 관장하여 풍년과 흉년을 만드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고​ 믿었다. 용은 12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써 여의주를 지니고 있어 신통한 능력을 상징한다.

사시(09~11시)는 뱀이 햇볕을 쬐기 시작하는 시간. 변온동물 뱀은 원활한 활동을 위해 햇볕을 쬐어 체온을 올려야한다. 오시(11~13시)는 양기가 끝나고 음기가 시작되는 시간. 동물 중에서 양기가 가장 강한 말이 배정됐다. 역병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며, 강인함을 상징한다.

미시(13시~15시)에는 양이 먹는 풀이 이 시간대에 가장 활발하게 자라고 광합성을 한다.한자로 양(羊)은 ‘좋은 운수’를 의미한다. 파생된 ‘선(善)’ 자나 ‘미(美)’ 자에서 보듯 착함,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신시(15시~17시)는 숲속에서 사는 원숭이들이 가장 시끄러울 때. 유(17~19시)는 하루 종일 모이를 먹던 닭들이 배불러서 집에 돌아가는 때다. 닭의 붉은 볏은 출세를 뜻하는 벼슬을 상징한다. 아침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목을 빼어 울므로 성실함을 나타낸다.

술시(19시~21시)는 어두워져서 개들이 도둑을 지키기 시작하는 때. 마지막 열두번째 해시(21시~23시)는 돼지들이 쳐묵쳐묵하고 잠자는 때라고 한다. 또 술시는 초경, 해시는 이경, 자시는 삼경으로 불렀다. 사경인 축시의 경우 한중일 공통적으로 바깥 거동을 금하는 미신이 있었다. 귀신들의 활동이 왕성해 온갖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대로 취급했다.

■ 태국과 베트남에 ‘고양이 띠’가 있다는 사실

12지 동물이 지금의 순서가 되기까지에도 많은 속설이 전한다. 정월 초하루 천상의 문에 먼저 도착한 동물 차례라는 설도 있지만 근거 없다. 옛날 옥황상제(혹은 석가모니)가 12위 안에 도착하는 동물들에게 상을 주는 대회를 열었다.

대회 전날 소는 다른 동물들이 잠자는 틈을 타 먼저 출발 했다. 쥐 역시 꾀를 내어 소가 출발 하는걸 보자 꼬리에 붙어 갔다. 부지런한 소는 열심히 걸었다. 시간이 흐른 뒤 호랑이 등이 뒤를 쫓았다. 결승점에 도착하기 직전 쥐가 폴짝 뛰어내려 소 보다 한발 먼저 통과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애완동물로 친숙했던 고양이가 왜 12지신에 없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12지가 정립된 다음 중국에 고양이가 유입된 까닭이라는 게 정설이다. 전설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고양이는 쥐의 거짓말 때문에 12지신 대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 쥐를 잡으러 다닌다는 것. 또 원래 12지신을 뽑을 때 고양이는 모든 동물의 무술 스승이었기 때문에 ‘1빠’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쥐의 거짓말로 최종 간택에서 탈락한 비운의 동물로 그려진다. 어떤 이유에서든 쥐는 고양이와 상극인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나라마다 12지 동물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 각 국가에 많이 서식하거나, 친근한 동물로 대체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집돼지이지만, 일본에서는 멧돼지로 인식한다. 태국·베트남·네팔은 토끼 대신 고양이가 차지한다. 토끼 묘(卯)와 고양이 묘(猫)의 한자음이 비슷한 데다 토끼보다는 고양이가 더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싶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은 용 대신 독수리와 물고기, 카자흐스탄에서는 달팽이가 용을 대신한다. 용이나 독수리, 물고기, 달팽이 모두 비 또는 물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인도는 호랑이와 닭 대신 사자와 공작, 용 대신 ‘나가’라는 환상의 동물을 넣었다.

베트남에서는 소 대신 물소, 양 대신 염소다. 논농사를 주로 짓는 베트남에서 물소가 일반 소 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베트남에는 양이 없었기 때문에 양 대신 염소를 떠올린다. 우리나라도 일부 지방에서 양띠를 염소띠 라고 부른다. 태국에서는 돼지 대신 코끼리가 들어간다. 그만큼 코끼리의 존재가 중요하기 때문. 우리나라에서 돼지해에 태어난 사람이 태국에선 코끼리해에 태어난 셈. 문화에 기인한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세계적 저 출산 국가 한국은 60년 내내 황금돼지가 필요

띠에 대한 담론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띠 동물을 통해 한 해의 운수,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성격과 운명, 궁합을 통한 결혼 생활까지 예측한다. 예컨대 호랑이띠 여자는 거세다느니, 황금 돼지해에 태어난 사람은 재복이 많아 평생 먹고살 걱정이 없다느니 하는 속설이 넘친다. 이런 이야기들은 현대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띠 동물에 색깔을 입혀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는 역사 자료에서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백말 띠 여자는 드세다’고 하지만, 민족시인 이육사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라는 시구에서 보듯 하얀 말을 상서롭게 여겼다. 12지 동물을 달리 확대 해석한 것은 근래 일본의 영향을 받아 퍼진 것이다.

​사실 모든 띠는 전부 60갑자에 한 번 돌아올 뿐, 어느 것 하나 특별히 희귀하거나 나을 게 없다. 흑룡이 좋으니, 청양이 좋으니 해도 결국 순서대로 이어진다. 전부 갖다 붙이기 나름.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현상이 된지 오래다. 정부가 마련하는 저출산 정책의 체감도가 낮다면, 차라리 출생아 수를 늘리는 데 효과가 입증된 황금돼지 방식의 마케팅을 60년 내내 추진해도 욕먹을 일은 아닐 성 싶다. ‘붉은 돼지’든 ‘황금 돼지’든 속설에 기댄 상업적 마케팅이라고 지적하지 말자. 저출산·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나라에 한줌의 활력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저 반가운 일 일뿐.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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