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청소부에서 호텔 매니저가 된 한국 청년 이야기

김홍묵 칼럼니스트
김홍묵 칼럼니스트

[내외뉴스통신] 김홍묵 칼럼니스트

아코르(Accor)그룹이 2년 전 호주 멜버른에 비즈니스 호텔을 개장했습니다. 아코르그룹은 매출규모로 유럽 최대, 세계 5위의 호텔 그룹입니다. 직원 수가 30만 명에 육박합니다.

아코르그룹 계열사 레지던스 호텔의 총괄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젊은 한국인 P입니다. 제너럴 매니저까지 오른 P의 첫 일자리는 호텔 변기 담당 청소부였습니다.

P를 테니스 클럽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테니스 실력이 제 승부욕을 자극해 한 세트 시합을 한 결과는 6-0. 한 포인트도 못 따고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러 살살 쳐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를 만나면 우선 신체적으로 압도당합니다. 180cm 가량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에다 온 몸은 근육질입니다. 가슴은 터미네이터를 연상케 합니다.

남성미 넘치는 골격과 마스크의 그가 과묵함 속에 가끔 던지는 살인 미소는 여심을 녹아내리게 합니다. 게다가 굵은 저음 목소리는 남심마저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자를 벗은 그의 뒤통수에 너무 큰 흉터를 발견했습니다. 몸 좋고 싸움 잘 하게 생긴 남자라면 원치 않은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었으리라 혼자 짐작했습니다. 결례일 것 같아 이유를 묻지는 않았습니다.

흉터보다 어떻게 P가 변기 청소부에서 최신 호텔의 제너럴 매니저가 되었는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Working Holiday Visa)로 29살 때 호주에 왔다고 합니다. 체류기간이 1~2년인 이 비자는 비자 만기가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농장 허드렛일, 배달 등 3D 업종을 전전하다 P가 맡은 일이 맨트라(Mantra)호텔의 변기 청소를 겸한 하우스키핑(housekeeping)이었습니다.

그러나 변기 청소로 인성을 인정받았다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P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변기 하나를 닦아도 그 변기에 제 이름이 브랜드(brand)처럼 새겨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건 그 친구가 닦았구만!’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당시 호텔 매니저가 왜 그를 변기 담당 청소에서 화장실 청소, 침구류 정리 등 책임이 큰 일들을 맡겼는지 수긍이 갔습니다.

기회는 한 번 더 찾아왔습니다. 맨트라를 인수한 아코르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연 사내 테니스 대회에서 P는 기적같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체육대학 재학 중 테니스 동아리에서 익힌 실력을 워킹 홀리데이 틈틈이 갈고닦은 보람이 있어 우연한 사내 대회가 행운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연히 경영진은 업무에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를 주목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호주 영주권 스폰서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저의 마지막 궁금증은 그의 머리 흉터였습니다. 예상대로 싸움으로 얻은 상처이긴 하지만, 싸움의 대상은 악성 뇌종양이라는 병마였습니다. 10대 후반 악성 임파선암 판정을 받고 두개골을 여는 대수술과 몇 년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살 때부터의 일입니다.

주말 구분 없이 24시간 대기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호텔 경영에 남기는데 여념이 없다는 그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없어요. 지금보다 더 큰 호텔을 맡겠다는 욕심이 없진 않지만, 저는 살아있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혼신을 다하여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하고 즐기려고 해요.”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항상 ‘비전’과 ‘다양한 미래예측에 기반한 전략적 사고’를 강조해 온 저에게 P의 대답은 매우 삽상했습니다.

[김홍묵 촌철]
경북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前한국일보-동아일보 기자
前대구방송 서울지사장
現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現내외뉴스통신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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