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김현우 기자)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

건너편 인왕산 바위에 환한 아침 햇살이 드리 비추기 시작한다. 그 옆 청와대 뒤편에 솟아 있는 뾰족한 북악산이 어둠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밑으로 중앙청. 

혁명군의 진주 속에 차분한 서울 시내를 바라보다가 문득, 등 뒤로 이승만 대통령이 느껴졌다. 

‘아하, 그렇지. 이곳에 이승만 대통령이 우뚝 서 계셨었지!’

얼른 등을 돌려 산 쪽을 향한다. 지난 달 말에 딸들을 데리고 와서 죄송한 생각에 마음이 울적했던 바로 그 곳이다. 일제가 세워 두고, 우리 한민족을 치욕에 떨게 했던 조선 신사. 그 건축물을 허물어 내고 몇 년 전에 우뚝 자리잡았던 이승만 대통령 동상. 

지난 해 폭파되어 사라지고 없다. 너무나 죄송스런 마음에 또 다시 울컥한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각하, 당신은 영원한 한국인의 우상이십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온 국민의 아버지. 국부(國父)이십니다. 당파 싸움에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울분을 토했고, 망한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하와이로 미국으로 망명 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신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미국과 함께 해야 하고 그들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셨죠. 

2차 대전 직 후 전개된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과정에서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을 설득하여 마침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하셨습니다. 일제가 호령하던 바로 그 곳 총독부 건물에 당당하게 올라서 새로운 한민족 국가 건국을 선포하셨습니다. 조선을 이어받아 5000년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평화선(peace line)을 그어 일제와 중공, 북한 김일성을 물리치고 국토를 확정하셨고, 농지 개혁을 통해 고달픈 농민들에게 먹고 살 일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북쪽 공산당, 남쪽 불순분자들은 끝끝내 대한민국 건설을 부정하고 방해하더니 6.25 남침을 강행해 전국을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각하께서는 곧바로 미국과 유엔 지원을 요청하여 불과 하루만에 유엔군 파견을 이끌어 냈고 전 세계 67개국의 지원을 받아내, 백척간두의 나라를 살려 내셨습니다.

조선 개국 공신인 이성계는 500년 이상 국조(國祖), 큰할아버지 태조(太祖)로서 떠받들어졌는데, 어찌하여 각하는 이렇게 초라하게 외면을 당하고 계십니까?

지난 해, 3.15 부정 선거를 일으켜 국민 분노를 촉발했고 4.19 사태를 유발한 원흉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각하를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든 ‘못된 정치꾼’, 더 나아 가서 각하가 이룩한 대한민국 건국과 국민 사랑의 공적을 인정치 않으려는 북한 공산당과 그 사주를 받은 좌파 데모꾼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그들을 척결하고 대한민국을 다시 건국하기 위해서 젊은 군인들이 함께 나섰습니다.

제게 힘을 주십시요. 각하께서 건국한 대한민국을 이제 다시 재건(再建)하고자 합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자유 민주를 외치는 자유당, 민주당, 신민당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청년, 젊은 군인들이 국정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가난을 벗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국민을 깨어나게 할 것이며, 공업화와 산업화, 수출 대국을 만들겠습니다.

각하, 다시 우뚝 솟아오르셔서, 오늘 이 순간 저희들의 군사 혁명을 지켜봐 주십시요. 세계 속에 강성 대국으로, 조선처럼 500년 이상 가는 당당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일궈내겠습니다.”  

“각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옆에 있던 한 장군이 나의 깊은 상념(想念)을 깨운다. 언 듯 눈가를 훔치며 현실로 돌아선다.

“여기 서 계시던 이승만 대통령 생각나시는가?”

“예. 당연하지요. 지난 해 그토록 요란스럽게 폭파해 버렸지요.”

주변의 본부팀 요원들 몇몇이 내 주변으로 모여든다. 모두가 숙연하게 묵념을 올린다.

오늘 우리가 시작한 군사 혁명은 대한민국의 정통을 이어받고, 1948년 건국 이념을 더욱 더 발전시켜 갈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국가 건설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4.19에 이은 현 민주당 정부도 이어받아야만 한다. 아무리 못났어도, 험이 많아도 지나 온 우리 역사를 부정할 수 없다. 일제 36년이 원통하긴 하지만 우리는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다만, 대한민국을 여전히 부정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끝내 ‘통일’이라는 미명 속에 공산화하려는 김일성과 공산당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응할 것이다. 싸움질만 하는 폭력배 이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불순분자, 좌파 공산당 세력, 끊임없이 시위와 데모를 일삼는 형편없는 존재들은 모조리 제거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일으키기 위해 우리가 나섰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이념을 이어받아 기울어가는 나라를 새롭게 재건한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내 표정이 여전히 풀리지 않음을 동지들이 가만히 지켜봐 주고 있다. 

냉정해져야 한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감상에 너무 깊게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정신을 차리자. 

팔목의 시계를 보니 7시가 되어 간다. 덕수궁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해병대 탱크가 기세 당당하게 포진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김 대령. 이제 육본으로 갑시다.”

김재춘 대령에게 작전 계획대로 혁명 지휘 본부를 육군 본부로 옮길 것을 명했다.

“예, 알겠습니다.”

남산 지휘부를 해병대 주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김 대령 차에 올라탔다. 가는 길 용산 일대에는 완전 무장한 혁명군이 당당하게 포진해 있었다. 포병단 병력들이 우리 차를 보고 거수 경례를 붙였다. 

장도영 총장이 새벽에 방첩대로부터 이곳 총장실로 옮겨와 있었다.

‘장 총장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짧은 단상. 

이제는 하나씩 혁명 과업을 완성해가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치권을 장악하고, 혁명군을 전국 비상계엄군으로 바꿔야만 한다. 헌법 상 비상계엄은 장면 총리가 발동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애매한 규정 상 윤보선 대통령이 발동할 수도 있다. 여차하면 군사혁명위원회 이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  현재 장면 총리는 행적이 묘연하다. 아마도 미국 대사관이나 미군 영내에 머물고 있으리라. 

그를 체포하는 일은 이제 글렀다. 그렇다면…

육본 총장실은 벌써부터 부산하다. 한 장군이 김윤근 장군에게 병력을 동원해서 육본 건물을 포위하도록 지시한다. 건물로 들어서는데 군 선배인 송석하 장군이 내려온다. 가볍게 눈을 맞추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서면서

“박 장군, 어서 오세요.” 한다. 

“선배님, 쏘긴 누굴 쏩니까?”

순간 퍼뜩 놀라며 겸연쩍어 한다. 내가 오기 직 전에, 송 장군이 육본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혁명군에 대항하라고 하면서 했던 소리를 전해 듣고 내가 선수를 친 것이다.

“아하, 뭘 요. 그냥...” 말꼬리를 흐린다. 

마침 미 장성 한 명이 내려서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옆에서 귀뜸하기를 미군 고문단장인 하우스 소장이라고 한다. 나를 가리키면서 뭐라고 한 마디 하는 것 같다. 그냥 무시하고 2층 총장실로 올라갔다. 

송석하 장군이 우리를 안내하면서, 

“자, 권총은 풀어 놓읍시다.” 한다.

순간, 멈칫 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나의 표정을 읽으면서 장 총장에게 화풀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가까이 있던 포병단 문재준, 백태하 등이 언성을 높인다.

“왜 권총을 뺐습니까? 어쩌려고?”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된다. 그들은 지금 안에 있는 장 총장에 대해 몹시 분개해하고 있는 중이다. 혁명군에 대해서 총을 쏘게 한 반혁명 처사에 포병단은 물론 해병대, 공수단 모두가 화가 나 있다. 장 총장을 당장 제거하자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송 장군은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미 꼬리를 내리고 반 쯤은 우리 편이 되어 있었다. 권총을 풀어 문 대령에게 넘겼다. 

송 장군의 안내를 받아 김재춘 대령과 함께 총장실로 들어 갔다. 다른 사람은 비서실에서 대기토록 했다. 빈 방에서 선 채로 잠시 기다리니 장 총장이 허겁지겁 들어선다. 둘이 경례를 붙였건만 본체만체 한다. 불쾌하고 당황스런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소리 나게 탁 내려 놓더니,

“자, 앉읍시다.”

잠시 언짢은 침묵이 흐른다. 순간, 톤을 낮춰 설득 모드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내 본심을 드러내고 강한 톤으로 압박할 것인가 머리를 굴린다. 사실 지금 이 순간, 조금은 당황스럽고 마음이 편치 않다. 직설적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장 총장의 숨결이 차분해진 것을 느끼면서, 낮은 목소리로 따지듯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헌병을 동원하여 혁명군에게 총질을 하게 하다니.”

“미안하게 됐어요. 장 총리에게 보고했더니 혁명군을 막으라고 소리소리 칩디다. 내가 어쩌겠어요. 처음에 30사단 보고를 받고 긴가 민가 하여 박 장군께 전화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헌병들에게는 차량을 이용하여 막으라고 했지, 총을 쏘라고는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발 뺌 하지 마세요. 헌병들이 총장 지시가 아니면 어떻게 발포를 합니까?”

“정말입니다. 어쨌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다행이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해병대 기질을 아시지 않습니까? 조금만 확대됐으면 큰 인명 피해가 날 뻔했어요. 그러면 곧바로 내전입니다.”

“자, 자. 진정하시고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해 봅시다. 미국이나 유엔군 측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미 팔군 사령부에 다녀왔습니다. 매그루더 장군은 내게 진압군 출동을 명하면서, 혁명군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했어요. 저도 난감해서 진압군 출동이 어렵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긴 했지만, 중간에 끼어 있는 나도 괴롭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전에 보고 드린 바와 같이 군사 혁명은 거의 전 군이 원하던 바요, 전 국민이 고대하던 일입니다. 어쭙잖게 총장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이미 꼬리를 내린 장 총장에게 적당히 엄포를 놓을 필요가 있다. 향후 군사혁명의 완성을 위해 그를 우리 편으로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내 생각보다도 박 장군 생각이 어떤 지 알고 싶어요.” 

“일단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 회의를 개최해 주십시요. 회의를 통해 우리의 혁명을 군 전체 의사로 추인해주시고 곧바로 비상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잖아도 3군 책임자들을 모두 불렀어요, 금방 도착할 겁니다.”

그때 탁자 위의 전화 벨이 울렸다. 총장이 받아든다.

“병력 출동을 멈추고, 잠시 기다려 보세요. 내 곧 연락 하리다.”

이한림 1군 사령관이란다. 새벽부터 1군 사령부로 연락하여 반혁명군 동원 논의를 한 것 같다. 

순간 화가 다시 치솟는다. 중간에서 이리저리 눈치만 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배반한 셈이다. 자칫 혁명을 전쟁판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오늘의 병력 출동은 전 군(軍), 전 국민이 원하는 군사 혁명입니다. 더 이상 주저치 마시고 총장님께서 앞장을 서주십시요.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장 총장이 여전히 결심을 굳히지 못한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시간이 지나도 그가 들어오지 않기에 우리도 같은 층에 있는 혁명지휘부로 돌아왔다. 부관이 보고하기를 총장실에 3군 지휘관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비서실과 복도에는 완장을 찬 혁명군이 가득했다. 김종필 중령이 미리 만든 ‘혁명군’ 완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혁명군을 확인하는 것임과 동시에 ‘비’ 혁명군(非 革命軍)이 누구인가를 구별해준다.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완전 군장으로 출동해 있는 본부의 장교들과 창밖의 병사들이 모두 힘들어 보인다.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에게 아침 식사와 함께 적절한 휴식을 주도록 지시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동지들과 함께 장교 식당으로 옮겨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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