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임소희 기자

나의 혈액형은 A형이다. 그러다 보니 내 소심한 모습들이 나의 혈액형 때문인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한동안 나의 혈액형을 잊고 살았고 언젠가 되돌아보니 나의 소심한 선택들은 혈액형이 아닌 원래 나의 성품, 성향 때문으로 인한 것이라고 정리하게 되었다.

몇 년 전 MBTI 열풍이 불었을 때 나도 간단히 테스트를 해보았다. 결과는 INTJ. 
납득이 가는 결과였다. INTJ의 특징, 성격들을 읽어보는데 구구절절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J" 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다. 

6시에 퇴근을 한다면 6시 30분에 집 도착, 7시에 저녁 식사 시작, 8시까지 식사 후 설거지, 9시까지 산책, 10시부터 11시까지 유튜브 보기, 12시 잠들기 전까지 씻고 정리하기. 매일 이런 식으로 시간 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진행이 안 되면 짜증이 나고 불안한 나이기에 J가 맞는 거 같긴 하다.

그럼에도 내가 J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여행을 계획할 때의 내 모습 때문이다.

출/도착 비행 일정을 정하고 대강의 도시 이동 계획을 짠다. 그 외의 디테일은 여행 중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도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일본에서 벚꽃 보기'.

이런 나의 몇 없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몇 년 전 부모님과 나고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3월 말이라, 만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이제 막 개화한 여리여리한 벚꽃만이 있었고 고즈넉한 나고야의 분위기만 느끼고 왔다. 그리고 이듬해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몇 년 간 일본 길이 막혔다.

작년부터 다시 일본 여행을 다니게 되며 벚꽃여행의 가능성이 조금씩 커져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번 3월 말 오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좀 부족한 J인걸까. 나의 계획은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다. 첫날 오사카의 날씨는 우중충하고 쌀쌀했고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벚꽃나무의 나뭇가지는 아직 쓸쓸해 보였다.

쌀쌀한 날씨의 오사카
쌀쌀한 날씨의 오사카

햇볕이라도 잘 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날씨에 다음날 이동하는 교토에 대한 기대만 더 커졌다.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교토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도시가 주는 아름다움은 충분했다. 어디를 가나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교토의 매력은 나의 버킷리스트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들었다. 

교토의 명소, 블루보틀/교토의 밤거리와 벚꽃
교토의 명소, 블루보틀/교토의 밤거리와 벚꽃

교토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거리로 나온 우리는 지난 이틀과는 너무도 다른 하늘에 놀랐다. 환한 햇살이 내려 입고 있던 외투 사이로 땀이 나올 것 같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우연히 들린 숙소 근처의 카페도 인상적이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골목 안 카페에서 조용히 즐긴 커피 한 잔과 토스트는 하루의 시작을 산뜻하게 만들었다.

골목 안에 위치한 노부부의 카페/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카페 내부
골목 안에 위치한 노부부의 카페/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카페 내부

진한 커피 한잔으로 따뜻하게 속을 데운 이후 우리는 청수사로 향했다. 여러 번 와본 곳임에도 골목골목 새로운 분위기가 가득했고 골목의 끝에서 마주한 만개한 벚꽃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결혼사진을 찍는 사람들,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로 청수사는 매우 붐비었다. 모두를 반기는 듯 벚꽃은 활짝 피어 있었고 만개한 벚꽃으로 가득한 청수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아름다웠다. 시간이 많지 않아 여유 있게 그 풍경을 즐기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벚꽃을 향한 내 시선에 더 큰 애정이 담겼다. 

만개한 벚꽃으로 가득한 청수사. 우리 눈에만 예쁜게 아닌지, 신혼부부, 수학여행 온 학생들, 관광객들로 가득하였다
만개한 벚꽃으로 가득한 청수사. 우리 눈에만 예쁜게 아닌지, 신혼부부, 수학여행 온 학생들, 관광객들로 가득하였다

마지막 일정으로 들른 ‘철학의 길’은 이번 여행의 화룡점정이었다. 꽃이 없어도 예쁜 길에 벚꽃까지 가득하니 걸음걸음이 신선의 길이었다. ‘철학의 길’은 교토에 가는 분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철학의 길의 정취
사진이 담지 못하는 철학의 길의 정취

철학의 길 초입에서 우연히 들린 초밥집의 유쾌한 사장님 덕분에 또 다른 추억도 하나 추가되었다.

철학의 길 앞에서 먹은 지라시 초밥/할아버지의 정성과 세월이 담긴 초밥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날 출근길을 걱정하며 생각에 빠졌다. 드디어 만개한 일본의 벚꽃을 봤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슬아슬하게 벚꽃을 보았지만 하루 이틀 차이로 이번에도 놓쳤다면 어땠을까..라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보았다. 나의 계획이 이번에도 실패로 마무리되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A형이고 INTJ이다. 어쩌면 많이 소심하고 내향적이고 이성적이고 또 계획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즉흥적이고 또 우연의 힘을 믿는다.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그러니 내 계획이 실패했다고 너무 풀이 죽을 필요도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벚꽃은 매년 다시 핀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거라면 언제가 됐든 하며 되는 것 아니겠는가. 

 

sohee101789@naver.com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8201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